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JJ:123 - IVA116, 회개와 역설의, 문제

엉클창 2025. 7. 17. 11:32

JJ:123 - IVA116

만일 인간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 머무를 수 있다면,[i] 그렇다면 결국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 자신이다. 회개가 비록 그 극한에 있어서 ‘수동적으로 당함(Liden)’이라 정의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회개는 하나의 역설(paradoks)이 아니다. 오히려 회개가 멈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화해(Forsoningen)를 믿는 자는 가장 깊이 회개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회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둔다; 만일 회개가 인간 안에서 가장 높은 것, 유일한 것, 곧 구원하는 것이라면, 그 회개는 다시 어떤 변증법(dialektik)의 법칙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그 변증법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말이다.

 

 

※ 해설 요약: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회개는 자기중심적인 작용이며, 역설은 회개를 넘어설 때 시작된다. 회개는 구원을 줄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역설적인 믿음, 곧 화해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가능하다. 이는 『철학의 부스러기』에서 말하는 "조건 없는 조건", "역설로서의 진리"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됨.



[i] 개신교 교회의 회개 이해(179,24절에 언급됨)에서 중요한 것은, 회개하는 자가 자신의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837년판 Büchner의 성경 핸드 콘코던스(2, 1055)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개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공로도 쌓을 수 없다. 죄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가증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 죄로 인해 죽을 만큼 괴로워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큼 충분한 슬픔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독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517 10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붙인 95개 조항 중 제30조도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무도 자신이 진정한 회개와 충분한 슬픔을 가졌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하물며 자신이 완전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더더욱 확신할 수는 없다.(Luthers Werke, 1, 33)

 

JJ:119도 참조할 것. 또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머무른다”는 구절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2부에서 재판관 빌헬름(Assessor Wilhelm)이 회개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역사 안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도록 회개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 있는데, 그 사랑은 언어로는 하나의 표현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회개(Anger). () 내가 자유롭게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순간, 나는 회개하는 것이다. (SKS 3, 207,32)

 

또한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회개할 줄 알고, 하나님과 논쟁하지 않으며, 회개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 바로 그런 사람은 고결한 사람이며, 깊은 영혼의 소유자이다.(SKS 3, 227,6)

 

요약하면, 키르케고르의 이 구절은 단순한 인간적 슬픔으로서의 회개가 아니라, 그 회개를 넘어서야만 하나님의 용서라는 역설(paradoks)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실존적, 신학적 강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