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의 인간 이해는 그리스 철학이 정의한 인간의 본질 개념을 내부로부터 해체합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그리고 스토아 철학 등에서 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규정은, 키르케고르에게는 신 앞에서의 단독자라는 실존의 역설 속에서 철저히 전복(顚覆)됩니다.
🏛️ 1. 그리스 철학에서의 인간의 본질 개념
고전 그리스 철학은 인간을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이성적 동물” (ζῷον λόγον ἔχον)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정치적 동물” (ζῷον πολιτικόν) – 아리스토텔레스
• “코스모스와 조화를 이루는 로고스적 존재” – 스토아학파
이 모든 개념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 보편적인 이성(logos)
✔️ 자연 질서 속 위치
✔️ 형상(Form)과 목적(telos) 안에서 파악하려 합니다. 즉, 인간은 이미 주어진 본성, 고정된 목적, 자연적 조화의 일부로서 규정됩니다.
⚡ 2. 키르케고르의 해체: “주어진 본성”이 아니라, “되어야 하는 실존”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고전적 정의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른, 기독교적 실존의 입장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되어야 할 존재다.”(Mennesket er en Synthese … som skal forholde sig til sig selv– 『죽음에 이르는 병』 서두)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 인간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이고 생성되는 존재
• 본질은 “무엇이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존재하느냐(hvordan)에 있음
•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신과 관계맺는 역설적인 실존자
즉, 키르케고르에게 인간은 “이성적 동물”도 아니고, “정치적 동물”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되라는 요청을 받은 불안한 존재입니다.
🔍 3. 『건덕적 강화』의 인용과 해체의 장면
"새와 백합에게배우라"의 본문에서, 키르케고르는 고대의 “존엄한 이방인(hedning)”—곧 고전 철학자를 존중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감탄할 줄은 알았지만, 여전히 입혀짐을 영혼에 돌렸다.”→ 즉, 신학적 기원을 인식하지 못했다.(141쪽)
또한 더 나아가 말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이 거룩한 ‘처음’을 잊고, 바지와 셔츠, 비단과 담비가죽에 대해 수다 떠는 것이다.”→ 즉, 인간됨을 당연히 여기고, 자신이 ‘입혀진 자’임을 망각하는 상태는 고전 철학자보다도 한참 타락한 상태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철학적 본질 규정 전체를 전복합니다:
• 인간됨은 이미 소유한 본질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선물이며, 하나님이 입히신 신비이며, 자기 안에서 매일 새롭게 생성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 결론: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다시 쓰는가?
고전 철학 | 키르케고르 |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되어야 할 실존이다 |
본성은 고정되어 있다 | 실존은 생성되고, 불안 속에 있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다 |
인간은 목적론적으로 설명된다 | 인간은 목적을 살아내야 하는 긴장적 관계다 |
인간됨은 자명하다 | 인간됨은 경이이며, 감탄과 감사의 대상이다 |
이러한 사유는 단순한 철학적 비판이 아니라, 실존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자아”를 회복하는 신학적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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