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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두려움과 떨림에서의 발레 무용수 본문
키르케고르의 발레 무용수 이야기는 그의 철학적 신앙 체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비유는 믿음의 운동에서 일어나는 두 단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무한 체념의 운동과 유한 속으로의 회복 운동입니다. 여기서 발레 무용수는 이 두 단계를 조화롭게 수행하는 믿음의 기사를 상징합니다.
1. 발레 무용수의 비유: 상승과 하강
키르케고르는 발레 무용수가 공중으로 도약한 후 다시 지면에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모습을 믿음의 운동에 비유합니다.
• 공중으로 도약하는 순간: 이는 무한 체념의 운동을 나타냅니다.
• 무한 체념은 인간이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 발레 무용수가 도약할 때, 그는 땅(유한성)을 떠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 과정은 깊은 고통과 슬픔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신앙의 첫 단계로서 필수적입니다.
• 지면으로 착지하는 순간: 이는 유한 속으로의 회복 운동을 나타냅니다.
• 믿음의 기사는 단순히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 그는 부조리한 믿음(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통해 유한성으로 돌아옵니다.
• 착지할 때 무용수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땅을 딛습니다. 이는 믿음의 기사가 유한한 삶 속에서 온전함과 평안을 누리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2. 무한에서 유한으로: 믿음의 두 단계
발레 무용수 비유를 통해, 키르케고르는 다음 두 가지 운동을 설명합니다.
1) 무한 체념의 운동
• 이 운동은 자신이 가진 모든 유한한 것을 포기하고 무한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세속적 가치와 집착을 내려놓으며, 신앙의 깊은 고뇌를 경험합니다.
• 발레 무용수가 공중으로 도약하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 이 체념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2) 유한 속으로의 회복 운동
• 무한 체념 후, 믿음의 기사는 다시 유한한 삶 속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얻는 유한성은 이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부조리한 약속을 받아들여, 유한한 것들을 새롭게 누립니다.
• 발레 무용수가 착지하는 모습은 이 회복 운동을 나타내며, 신앙이 세상 속에서 완전히 구현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발레 무용수와 흔들림 없는 착지
키르케고르는 발레 무용수가 도약 후 착지할 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착지 순간에 불안정하거나 흔들립니다. 이는 세속적 삶에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 하지만 믿음의 기사는 도약 후 완전히 땅에 닿으며, 자신의 유한한 삶을 흔들림 없이 받아들입니다.
• 이 안정된 착지는 믿음의 기사가 부조리한 것을 통해 다시 유한한 삶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4. 결론: 발레 무용수 비유의 핵심
발레 무용수 비유는 신앙의 역설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 인간은 무한을 향해 도약(무한 체념)해야 하지만, 다시 유한 속에서 그 무한성을 살아내야 합니다.
• 믿음의 기사는 이 두 운동을 조화롭게 수행하며, 겉으로는 평범한 유한한 삶을 살지만, 내면에는 하나님과의 깊은 신앙적 연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발레 무용수처럼 믿음의 기사는 공중으로 도약했다가, 다시 땅 위에서 흔들림 없이 서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주는 키르케고르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글의 각주에 대한 해제
키르케고르의 이 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관련된 논의를 포함하며, 특히 악마(메피스토펠레스)의 본질적 특성을 탐구합니다. 당신이 제시한 “악마의 도약”은 키르케고르의 믿음과 무한 체념, 유한 속으로의 운동과는 대조적으로, 악마적 특성으로 보이는 즉각성과 불연속성을 나타냅니다. 이를 키르케고르의 사상과 연관 지어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악마의 도약과 즉각성
키르케고르는 부르농빌(Bournonville)의 연극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갑작스럽게 도약하는 모습”을 언급하며, 이것을 악마의 본질적 특성으로 봅니다. 이 도약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내포합니다:
• 갑작스러움(Suddenness:): 악마의 도약은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입니다. 이는 사고의 과정 없이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 악마는 생각하고 성찰하기보다, 충동적으로 행동합니다.
• 이 즉각성은 신앙적 삶에서 요구되는 깊은 고민과 성찰의 결핍을 나타냅니다.
• 악마적 본질의 상징: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악마적 존재는 영적 긴장과 성찰 속에서 탄생하는 믿음의 운동과 반대됩니다.
• 믿음의 기사는 무한한 체념과 고뇌를 거쳐, 유한한 세계로 돌아오는 복잡한 과정을 겪습니다.• 반면, 악마적 도약은 이러한 성찰적 과정을 생략하고, 순간적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2. 악마와 지루함의 관계
일기에서 언급된 “악마의 지루함”은 키르케고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 키르케고르는 지루함을 악마적 상태로 보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의미와 방향을 잃고, 영적 공허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합니다.
• 악마는 지루함을 통해 인간을 타락시키며, 영적 성장을 방해합니다.
이것은 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가 보여주는 지루함과 관련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세속적 쾌락을 통해 삶의 공허함을 채우려 하지만, 이는 참된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지루함이 “코믹한 것으로 전달된다”고 언급하며, 이는 악마의 활동이 때로는 인간의 삶에서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띤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3. 악마적 도약과 신앙적 도약의 대조
키르케고르의 믿음의 도약과 악마적 도약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믿음의 도약:
• 고통스러운 무한 체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의 행위.
•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조리한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 유한성과 영원의 긴장 속에서 신앙적 진리를 발견.
악마의 도약:
• 고통과 성찰을 생략한 충동적이고 단절적인 행위.
• 지루함과 자기기만 속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이고 불연속적인 반응.
• 진리와 방향성이 결여된, 단순히 순간적 쾌락이나 공허를 채우려는 움직임.
4. 괴테의 파우스트와의 연결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선택들을 제안하며, 인간의 깊은 고민을 비웃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악마적 성격으로 간주하며, 믿음의 도약과 악마의 도약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 파우스트의 선택: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함으로써 악마적 도약을 선택합니다. 이는 성찰적 신앙 대신 세속적 쾌락과 충동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 키르케고르의 입장: 파우스트와 달리 믿음의 기사는 깊은 고뇌와 체념을 거친 후, 하나님을 향한 부조리한 믿음을 선택합니다.
5. 결론: 악마의 도약과 신앙의 긴장
악마의 도약은 즉각적이고 단순한 선택으로 신앙의 복잡성과 긴장을 회피하는 태도를 상징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통해 신앙적 도약의 어려움을 부각하며, 믿음의 기사가 성취하는 운동은 악마적 도약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악마는 “즉각성과 지루함”으로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반면, 믿음의 도약은 “고뇌와 체념”을 통해 구원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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