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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순간의 결단은 어리석은 것, 해설 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 해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결단의 순간은 어리석음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결단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결단이 이성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실존의 도약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 먼저 문맥 정리: “결단의 순간(afgørelsens Øieblik) 은 어리석음이다 (Daarskab)” 왜냐하면 그 순간 안에서 인간은 ‘진리’ 앞에서 자기 존재를 걸고, 그 존재를 형성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키르케고르가 결단의 순간을 “어리석음”이라 부른 이유: 1. 결단은 인식이 아니라 실존의 도약이다• 소크라테스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으며, 학습은 그저 이성의 인식 활동입니다.• .. 더보기
실족한 자가 자기의 본성에 따라 말하지 않는 이유 이것은 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에 대한 주석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실족 개념과 요한복음 8장 44절, 그리고 거짓(løgn)과 역설(paradox) 사이의 미묘한 관계 “실족한 자는 자기 안에서 역설을 오해하여 반응한 것이지, 악마처럼 거짓을 의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그렇다면 실족한 자는 ‘거짓의 아버지’인 마귀의 영역에 속한다기보다, 진리를 무의식적으로 왜곡해서 되받아친 존재가 아닌가?” 🧭 결론부터 말하자면:그렇습니다. 실족한 자는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악마”와 다르며, 그는 “무의식적으로 역설을 왜곡하여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적 실족의 비극성입니다. 그는 실족을 악(ondskab)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오히려 그것은진리와의 마주침에서 발.. 더보기
청각적 기만, 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 해설 “청각적 기만(akustisk Bedrag)”은 Philosophiske Smuler와 관련된 문맥에서, 실족(forargelse)과 역설(paradoxet) 사이의 관계를 예리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 질문 정리: “청각적 기만”이란 표현에서, • 역설이 기만인가?• 실족이 기만인가?• 아니면 실족이 역설을 잘못 듣는 기만인가?→ 정답은 세 번째입니다. “청각적 기만”이란, 실족한 자가 들은 것은 자기가 들은 것이 아니며, 실은 역설이 ‘자기 안에서 울려 퍼진 것’일 뿐인데, 그걸 바깥에서 들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 출처: Philosophiske Smuler (Philosophical Fragments)다음은 해당 구절의 요지:“Forargelsen … lyder anden.. 더보기
고통에 대한 관점, 스피노자, 프랭클, 키르케고르 스피노자의 수동적 고통(passio)과 빅터 프랭클의 의미 없는 고통, 그리고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고통 ◉ 스피노자의 수동적 고통 =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는 무기력스피노자에게서 passio(수동적 정념)는, “우리가 그 원인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가지지 못할 때 생기는 정서”입니다. 따라서 이 고통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그만큼 우리를 휘두르는 감정이 됩니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전체 체계 속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하므로→ 극복 불가능한 정념이 됩니다. 이건 바로 프랭클이 말하는, “고통이 ‘의미’를 상실했을 때, 그 고통은 파괴적인 것이 된다”는 명제와 정확히 겹치죠. ◉ 빅터 프랭클: 고통이 의미 없을 때, 그것은 인간을 무너뜨린다빅터 프랭클은.. 더보기
고통, 스피노자와 키르케고르 비교 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 해설왜 키르케고르가 고통(Lidelse)을 설명하면서 스피노자와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려면, 두 철학자 사이의 진리와 정념, 능동과 수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조는 단순한 반박이나 논쟁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변증법 속에서 고통의 실존적 본질을 밝히려는 키르케고르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 스피노자와 키르케고르: 왜 고통의 문제에서 만나는가?◉ 스피노자: 고통은 수동성(passio)이다.• 스피노자에게 정념(Affekt)은 우리가 **충분한 원인(adequate cause)**이 아닌 상태에서 외적 영향을 받아 생기는 신체적 변화입니다.  우리가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그 감정은 수동적인 고통.. 더보기
자기 사랑의 역설, 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 주해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자기 사랑(Self-love, Selvkjærligheden)의 역설적인 본질, 그리고 그것이 실족(Forargelse)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존재론적 고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세 겹의 역설 구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 자기 사랑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다처음 문장에서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하죠: “og synes det ikke allerede en Modsigelse, at Kjærlighed til sig selv er Lidelse?”“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고통이라는 것은 이미 모순처럼 보이지 않는가?” 자기 사랑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사.. 더보기
키르케고르에게 코믹이란 무엇인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코믹(Det Comiske)”이란 단순한 웃음이나 유머가 아니라, 실존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모순과 진지함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실존적 오류’ 혹은 비극의 반대 개념입니다. 🎭 1. 키르케고르에게서 “코믹”이란 무엇인가?키르케고르는 『반복』, 『철학적 단편』, 『아이러니 개념에 대하여』 등에서 코믹을 단순한 농담이나 기분 좋은 유머로 보지 않고, 실존의 진리에 대한 비틀림 또는 도피의 징후로 이해합니다. “코믹은 언제나 ‘모순’에서 발생한다.”– 『아이러니 개념에 대하여』 🧩 2. 코믹은 어떤 모순에서 발생하는가?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코믹함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발생합니다:상황코믹이 발생하는 방식진지해야 할 자가 진지하지 않을 때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도 진지하.. 더보기
키르케고르의 불멸의 개념 그에 따르면 **불멸성(Udødelighed)**은 단순히 죽은 이후의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실존이 생성될 때’ 시작되는 존재론적 사건입니다. 🧭 키르케고르 철학에서의 불멸성은 “사후 상태”가 아니다전통적인 형이상학이나 교리적 기독교에서는 불멸성을 흔히 이렇게 이해합니다: “인간은 죽은 후에도 영혼이 계속 존재하므로 불멸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불멸성은 존재의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단지 불멸한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형성해갈 때, 그 형성된 존재 안에서 불멸이 시작된다. 🔥 『죽음에 이르는 병』과 Tilværelse의 구조『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키르케고르는 자아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