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부스러기 3장 부록 해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결단의 순간은 어리석음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결단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결단이 이성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실존의 도약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 먼저 문맥 정리:
“결단의 순간(afgørelsens Øieblik) 은 어리석음이다 (Daarskab)” 왜냐하면 그 순간 안에서 인간은 ‘진리’ 앞에서 자기 존재를 걸고, 그 존재를 형성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키르케고르가 결단의 순간을 “어리석음”이라 부른 이유:
1. 결단은 인식이 아니라 실존의 도약이다
• 소크라테스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으며, 학습은 그저 이성의 인식 활동입니다.
•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말합니다: 진리는 외부로부터 역설적으로 주어지며, 인간은 그 진리를 수용할 때 이성의 한계를 넘는 도약(leap)을 감행해야 한다.
이 도약이 바로 결단의 순간이며, 이 순간은 이성의 눈에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입니다.
2. 결단은 계산될 수 없다 → 불합리성(Absurditet)
• 우리는 어떤 행동이 합리적이고 결과가 좋을지를 따져본 후에 결정하는 걸 익숙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신 앞에서의 결단은 불확실성 속에서, 이해할 수 없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단은 세상적, 합리적, 철학적 기준으로 보면 ‘미친 짓’, ‘어리석음’으로 보인다.
예:
•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믿음의 행위
• 제자가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결단
• 순교자가 목숨을 걸고 진리를 고백하는 행위
→ 모두 이성적 계산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어리석은 결단”**입니다.
3. 실존적 진리는 반드시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형식으로 온다
• 키르케고르는 역설(paradox)을 진리의 형식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역설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처럼, 이성에게는 언제나 불합리(Absurditet)하게 다가옵니다.
진리는 역설로 다가오며, 역설 앞에서의 결단은 이성의 눈에는 다만 어리석음(Daarskab)처럼 보일 뿐이다.
🕯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결단의 순간이 어리석은 짓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순간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향한 실존의 전적 도약이기 때문이며, 그 도약은 항상 인간적으로는 ‘미련한 것’, 그러나 신 앞에서는 ‘참된 것’으로 드러난다.
📘 바울과의 연결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 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을 자주 염두에 두며, 진리를 향한 결단이 왜 항상 어리석음의 형식으로 나타나는지 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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