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자기 사랑(Self-love, Selvkjærligheden)의 역설적인 본질, 그리고 그것이 실족(Forargelse)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존재론적 고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세 겹의 역설 구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 자기 사랑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다
처음 문장에서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하죠:
“og synes det ikke allerede en Modsigelse, at Kjærlighed til sig selv er Lidelse?”“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고통이라는 것은 이미 모순처럼 보이지 않는가?”
자기 사랑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사랑이 실은 고통의 형태로 드러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상처 입은 상태에서 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왜곡된 힘의 표출입니다.
2. 실족은 언제나 고통받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처럼 보일지라도
실족은 단지 역설적인 진리(즉, 신적 진리)에 대한 인식의 거부나 반발만이 아닙니다. 실족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자기 표현을 합니다:
• 조롱 (Spotten)
• 냉담함을 연기하는 완고함 (Forhærdelsens Ligegyldighed)
• 경솔한 승리감 (triumpherende Letsind)
• 신랄한 기지로 공격함 (Vittighedens Piil)
이 모든 표현들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의 왜곡된 결과입니다. 즉, 고통이 자신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연기이며, 모든 실족은 이런 방식으로 자기 사랑의 상처 입음을 드러냅니다.
3. 실족은 강한 자와 씨름한 후의 ‘부러진 자의 유연성’이다
가장 인상적인 은유는 마지막 부분에서 나옵니다:
“Forargelsen er dog lidende, den har stridt med den Stærkere, og hans Kraftstilling er ligesom i legemlig Henseende Dens, hvis Ryg er brudt, hvilket jo giver en egen Art Smidighed.”
실족한 자는 진리라는 ‘더 강한 자’와 씨름했지만, 결국 꺾입니다. 그는 이제 등뼈가 부러진 자처럼 특유의 유연성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승리의 힘이 아닌 패배의 유연성입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역설은 바로:
자기 사랑이 자신을 방어하는 모든 힘의 표출은 결국 고통의 가면이다.
요약하자면
이 글은 본질적으로 자기 사랑의 역설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실족이라는 신앙의 역설 앞에서의 반응으로 구체화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자기 표현도, 조롱도, 냉담도, 힘도—실은 모두 고통의 징후이며, 실족은 항상 고통이다라는 실존적 진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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