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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I 777 (Pap. IV B 13:21) n.d., 1842-43, 의심에 대하여 본문

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JP I 777 (Pap. IV B 13:21) n.d., 1842-43, 의심에 대하여

엉클창 2024. 9. 3. 17:27

미완성 부분의 개요에서;
후퇴하는 의심(Retiring Doubt).
ἐποχή  
(내 판본에서 표시해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의 한 구절).
탐구하는 의심(Inquiring Doubt).  
이것은 실제로는 의심이 아니며, 특히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단지 그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의심할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시인이 시적 아이디어 속에 작품의 내면적으로 알려진 힘을 포착하기 전에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자유 속에서만 내가 자유롭게 들어간 것에서 나올 수 있다. 또는 내가 의심 속에서 나오려면, 내가 자유롭게 의심 속으로 들어갔어야 한다. (의지의 행위.) —JP I 777 (Pap. IV B 13:21) n.d., 1842-43

### 해설:

이 글은 의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종류의 의심을 구분하며, 이 의심이 자유와 의지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탐구한다.

1. 후퇴하는 의심(ἐποχή):
   - 여기서 "ἐποχή"는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회의주의(Skepticism)에서 사용된 용어로,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한 전기적 서술을 남긴 인물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구절을 저자가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회의주의적 태도를 염두에 둔 듯하다. 이 의심은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판단을 유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2. 탐구하는 의심:
   - 이와 대조적으로, "탐구하는 의심"은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할지에 대한 의심이다. 이는 창조적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심으로, 시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3. 자유와 의심의 관계:
   - 이 글은 의심이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의심에 들어가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의 행위이며, 그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그 의심에 들어갔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의심이 단순한 수동적 상태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지의 작용에 의해 시작되고 해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의심이 단순히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과정의 일환으로서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기 위한 방법임을 나타낸다. 동시에 의심은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이며, 그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도 결국은 자유로운 의지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