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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 칼 바르트 이해 본문
1. 칼 바르트의 현실 이해-계시현상학적 존재이해
한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많은 사람들이 바르트의 성서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들의 일반적 비판은 바르트가 성서를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키지 않고, 성서라는 문서에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에만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마치 바르트가 글로써의 문자를 무시하고 형이상학적 논리를 중시하는 내면의 음성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비판은 보수주의자들이 이미 "문자-영"의 내적인 말과 외적인 말 등 이항 대립적 형이상학적 구도를 전제로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르트의 성서이해는 오히려 이러한 이항 대립적 형이상학의 전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로 등장하는 차원의 게시적 현실이해를 깆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물론 많은 구절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으로 일어나고, 그 사건은 인간이 가진 구체적인 현실의 조건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특별한 행동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Karl Barth, Kirchiche Dogmatik, I/1, (이후 KD), (Zurich: Theologischer Verlag, 1986), 112쪽; KD, I/2, 523쪽 이하)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가 단지 성령이 역사하는 역동적 사건에사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르트가 목적하는 바는 그 성서안의 인간성의 요소들조차도 성서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없다는 적극적인 인간성의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KD, I/1, 89쪽, 특히 101쪽 이하)
바르트의 신학을 집합관계로 이해하면 편하다. 바르트의 논리를 따라가면, 전체집합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기록된 계시로서의 성서 자체는 부분집합이다. 그렇다면 부분집합이 전체집합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 본질적 규정을 맡은 것이 옳은 것이며, 부분집합과 전체 집합의 관계를 역전시켜서 부분집합이 전체집합을 소외시킬 수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서는 그 자치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체집합 속에 속해 있다.
성서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며, 바르트에 따르면, 이제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제시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역사하게 되었던 내적 역동성의 사태를 보여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성서가 인간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어 기적의 문서로 받아들여지고 그 책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성서해석학의 관심은 이에 상응하여 의심의 해석학이나 독자 중심의 해석학에서처럼 문학적 자의성이나 이데올로기 비판의 한계를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문자가 이미 우리에게 성령의 계시로서 주어진 해석 자체를 진행하는 현재 진행형인 해석학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해석학의 신학적 지평은 철저히 계시 중심적이다.
성서는 현실로 주어진 것이다. 그는 이 하나님의 성서의 현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이외에는 다른 현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교회적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의 신학은 항상 교회의 말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신학의 출발점은 어떤 일반적인 경험주의 입장에서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나 개념적 이해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다. 바르트에 따르면, 교회라는 장을 떠난다면, 모든 인간의 사유는 추상적이다. 어떤 철학적 원리를 선험적으로 발견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성서, 설교, 도한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현실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면서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피는 것에서 그의 신학은 시작된다. 이러한 해석학적 전제는 우리의 삶과 보편적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존재라는 근본 지평을 새롭게 이해함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철학 없이 신학으로만, 오로지 신앙적 확신과 그에 대한 계시 현상학적 기술에서 하나님과 세계를 찾으려 노력한 신학자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그는 철저하게 키르케고르를 계승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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