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도예베르트
- 미학
- 토대주의
- 콩깍지가씐사랑 #카리스아카데미 #복수 #사랑 #허다한죄
-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
- 절망
- 계시
- 문화 개신교
- 라이프니츠
- 말씀
- 반틸
- 내면의 감금
- 믿음
- 반토대주의
- 현상학
- 키르케고르
- 시인의 실존
- 영원한 행복
- 죽음에 이르는 병
- 말씀은 거울이다
- 후기 토대주의
- 변증학
- 말씀의 거울
- 카리스 아카데미
- 자유주의
- 능력의 말씀
- 헤겔
- 카리스아카데미
- 칼 바르트
- 계시현상학
- Today
- Total
프라우스
헤겔 예술, 종교, 철학 본문
플라톤의 이데아는 중세 시대 '신의 말씀'으로 탈바꿈한다. 중세 미학은 신의 말씀이라는 정신 세계의 원형을 탐구하여 창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라고 보았다. 초기 기독교는 교리 체계가 매우 엉성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세계관을 구축
하기 위해서 플라톤을 활용했다. 중세 미학은 주관적 차원의 느낌을 배제하고 사물 너머의 본질을 추구했다. 이는 플로티누스의 미학을 계승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세의 미학은 상징과 관련이 있다. 일종의 도상학이다. 자연 세계의 모방은 '눈에 보이는 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다만, 자연은 '신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세 미학이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말씀을 이 땅에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것이 헤겔이 말한 상징적 예술의 형식이다. 상징적 예술의 형식은 개념과 실재가 서로 부적합한 예술 형식이다. 이 형식은 개념과 실재의 합치를 추구하지만, 참된 개념과 완전한 실재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형태이다. 헤겔은 상징적 예술의 형식에서는 아직 내용에 적합한 개별적 형태로 표현되지 못하고 이질적 자연 대상으로 대체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례로 헤겔은 몸통은 사자이고 얼굴은 인간인 고대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제시한다.
자연세계와 엄격하게 분리된 중세 예술에 자연주의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한 이유는 교회의 세속적 권력과 관련이 있다. 교회는 세속 권력에 깊게 관여하면서 물질적 재산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청빈 논쟁으로 이어진다.
베네딕트는 529년 수도원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었다. 이것은 다른 수도회에도 모범이 되어 널리 퍼져 나갔다. 수도원은 세속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의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이었지만 프랑코 왕국이 새로 정복한 영토의 선교 임무를 맡게 되면서 세속 정치와 밀접하게 결합될 수 밖에 없었다. 수도원-교회가 점차 국가의 중요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교회 내부에서 개혁의 요구가 있었다.
철저하게 '침묵과 은둔'을 이행한 시토 수도회, 부패한 교회에 저항한 클뤼니 수도원은 평신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황에 충성하고 교리 이론을 중시하며 민중각성운동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종교재판에 앞장 선 도미니크 수도원이 탄생했다. 다른 한편으로 청빈을 내세우며 이단 운동의 상당 부분을 흡수한 프란체스코회는 교황의 승인까지 받아 공식 수도원이 되었다.
청빈논쟁은 교회 내부 개혁운동의 한 줄기 시작되었다. 논쟁은 그리스도의 가난, 수도원들이 실질적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인가, 소유하는 것인가하는 철학적 논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투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은 교회가 세속의 물질을 소유하고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정치권력을 놓고 벌어진 패권싸움이었다. 청빈 논쟁의 실질적인 함의는 결국 세속의 권력을 누가 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패하고 세속적인 교회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던 용감한 수도사들의 목표는 '로마 교회의 정화'였지만 그것은 중세 사회를 유지하는 심각한 틀이었던 사제, 기사, 농부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플라톤주의와 결합한 중세 미학은 자연 세계의 모방을 포기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세계의 모방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꺼져가는 중세의 불꽃을 살리기 위해 헌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여
중세 신학을 지키려 했다. 신은 그림자 너머 피안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닌, 자연 안에서 인식 가능한 절대자가 되어야 했다. 신은 자연 속에 신성함과 법칙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예술가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 질서를 인식해야 하는 사명감을 부여 받았다. 자연 세계에 대한 모방이 부활한 것은 근대 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국, 헤겔에서는 이것이 고전적 예술의 형식으로 해석된다. 고전적 예술 형식에서는 개념과 실재가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이념상이 온전히 실현된다. 고전적 예술 형식은 상징적 예술 형식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 결함, 즉 개념의 추상성과 개념과 실재의 불일치 문제가 극복된다. 이때 고전적 예술 형식에서의 참된 실재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신들이 개별적 인간 신체로 표현된 것을 헤겔은 그 사례로 제시한다. 헤겔에 의하면, 예술의 아름다움은 고전적 예술 형식에서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다.
마지막 단계는 낭만적 예술의 형식이다. 낭만적 예술의 형식은 고전적 예술 형식이 성취한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해체된 것으로, 개념과 실재의 조화 상태를 초월한 것이다. 헤겔은 고전적 예술 형식은 완전한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이 형식의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전적 예술 형식이 무한한 개념을 인간의 형상이라는 감각적이며 유한한 실재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낭만적 예술 형식에서는 개념과 실재가 다시 부적합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상싱적 예술의 형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개념이 자기 심화를 통해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 실재를 찾음으로써, 예술 형식은 감각적 표현을 포기하고 외적인 것과 합치에서 벗어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구체적 개념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형태화할 것인가는 이 형식 내에서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낭만적 예술 형식은 개념을 실재를 통해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예술 자체의 한계를 인식하는 예술 형식으로, 헤겔은 음악, 회화, 시에서 개념이 실재를 넘어선 상태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무한한 개념을 유한한 실재로 표현해야 하는 예술의 한계를 추월하여 개념이 자신 안에서 실재를 찾아 표상화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헤겔은 근대 철학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물 자체와 주관을 근원적으로 통일시켰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의 방향을 추동하는 건 '정신'이다. 헤겔은 인간 역사의 발전 양상을 '정신'의 발전사로 보았다. 우리를 둘러사고 있는 우주(자연)에는 거대한 법칙이 존재한다. 태고적 '로고스(정신)'은 외화된 모습인 자연, 사회, 역사의 대상이 된다. 자연이나 역사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나 역사다.
에겔에게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과정'이었다. 정신의 '외화'를 통해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원환운동(자기복귀)은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집약된다. 인간들 각각이 가진 주관정신은 객관정신(사회, 법, 도덕, 인륜)과 종합되며 절대정신으로 발전한다.
절대정신은 인류사에서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은 진리를 '감각'으로, 종교는 '표상'으로, 철학은 '개념'의 형태로 진리를 드러낸다. 감각에서 표상, 그리고 개념의 형태로 인류사의 절대정신이 성장해 왔다는 것이 헤겔 미학뿐 아니라 역사발전론의 핵심이다.
정리
헤겔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감각적 형태'로 드러내는 매체이다. 자연은 이념의 그림자일 뿐 완전한 아름다움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가는 결함이 있는 자연에서 취사선택해 완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헤겔은 정신과 물질의 융합 형태에 따라 예술사를 3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 상징적 예술 형식(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시기)
이 시기 정신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이 정신을 압도한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동방의 거대한 무덤 건축물은 내용과 형식이 충분히 통일되지 못한 채 물질이 우세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진리는 상징으로서 미세하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2단계: 고전 예술 형식(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시기)
이 시기 정신은 성숙되어 물질 속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헤겔은 그리스 조각에서 '미'가 이미 실현되어 완벽해졌다고 보았다. 헤겔 미학이 고전주의에서 정신과 물질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 것은 당시 빙겔만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독일 사학자 빙겔만은 신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했던 아크로폴리스 시대 그리스 예술 조각을 '숭고 양식'이라 명명했다. 그리스인들은 엄격한 비례, 수학적 계산 속에서 우연의 요소를 결합했다. 빙겔만은 예술이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수 없는 완성된 상태를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에서 찾았다.
3단계: 낭만 예술 형식(정신이 물질을 압도하는 시기)
이 시기 정신은 충분히 성숙해 이제 감각적 형태(물질)를 벗어버린다. 여기서 정신은 물질에서 벗어나 시, 음악, 회화 등 표상으로 표현된다. 헤겔이 살았던 시대는 이성과 진보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 과학의 발전, 근대 시와 음악이 뚜렷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헤겔이 3단계로 구분한 예술사는 단순하게 도식화되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대략 들어맞는다. 헤겔이 이를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통일'이라 불렀다. 음악은 물질을 완전히 탈피했고, 순수 정신인 시는 추상적인 문자로 진리를 전달한다. 예술사를 정신의 발전사로 해석한 헤겔이 미학은 훗날 20세기 추상화가인 칸단스키, 몬드리안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겔은 정신과 물질 매체가 조화를 이룬 그리스 예술에서 예술은 정점에 달했고, 그 후 예술은 정신이 더욱 성숙해짐에 따라 '표상'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종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신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종교는 개념적 사유를 통해 진리에 다가설 수 있는 철학에게 그 자리를 내주며 절대정신의 역사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를 두고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철학)는 해질녘이 되어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철학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피노자 정리 (0) | 2024.08.15 |
---|---|
바르트와 반틸 비교 (0) | 2022.05.29 |
신정통주의 칼 바르트 이해 (0) | 2022.05.29 |
헤르만 도예베르트 (0) | 2022.05.24 |
라이프니츠 (0) | 2022.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