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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이방인의 염려 관련 일기(NB4:117) NB4:117 (Pap. VIII1 A 660)“이방인의 염려”에서맺음말 (Udgang)이제 끝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고자 합니다. 싸우고 계신 분이여,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혹시 이 싸움 속에서 시험을 받으며, 세상적이고 지상적인 염려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이시든지, 혹은 그러한 염려로 인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우나, 그럼에도 위로를 갈망하시는 분이시든지, 혹은 슬프게도 길을 잃었으나, 여전히 인도를 갈망하시는 분이시든지 간에 말입니다.당신은 아마도 때때로—특히 각각의 강화가 시작되는 부분에서—그 서술이 충분히 진지하지 않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이르게 판단하지는 마십시오. 그저 읽으시되, 염려하지 말고 읽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인간에게 무엇보다 .. 2026. 2. 11.
NB24:159, Pap. X4 A 412, 말씀의 거울 앞에서 말씀의 거울(Ordets Speil)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참된 축복(sand Velsignelse)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것 [a] 말씀의 거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참된 축복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것. (신규, Nyt) 1) 사람은 어느 정도 이미 자신을 알고 있어야 한다.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다시 알아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아는 정도만큼만 자신을 다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일종의 준비(Forberedelse)가 요구된다. 실제로도 그렇다. 우연히 거울을 보게 되었거나, 혹은 거울을 그렇게 배치해 두어서 자기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이 거울 속의 자기 자신(Speilbillede)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그 모습을 자기.. 2026. 1. 18.
뉴스레터, 어떤 플랫폼이 좋은가?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6. 1. 7.
익명성은 선의 의무인가? 익명성은 선의 의무인가― 외양의 경제를 끊는 자유에 대하여 “참된 선을 행하는 사람은 보상을 피해야 하므로 익명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 선은 거의 언제나 외양의 경제 안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선행은 곧 평가와 칭찬, 상징 자본과 명성으로 환전된다. 이 구조 속에서 선은 더 이상 선 그 자체로 머물지 못하고, 선해 보임이라는 관리 대상이 된다. 플라톤 『국가』에서 글라우콘이 폭로한 인간 사회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는 정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회가 사랑하는 것은 정의의 보상과 외양이다.이 폭로를 실존의 문제로 끌어올린 인물이 키르케고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그러므로 선은 익명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 2026. 1. 4.
선은 왜 익명으로 나타나는가 선은 왜 익명으로 나타나는가― 글라우콘의 도발과 키르케고르의 전도(轉倒) 플라톤의 『국가』 제2권에서 글라우콘이 제시하는 정의로운 인간의 운명은 잔혹할 정도로 극단적이다.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채찍질을 당하고, 눈이 뽑히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은 흔히 “선은 드러나면 핍박을 받는다”는 교훈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의 의도는 권면이 아니라 폭로다. 그는 선이 박해받기 때문에 익명으로 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선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의 외양을 선택하는 구조를 냉혹하게 드러내고자 한다.글라우콘의 논증에서 핵심은 이분법이다. 하나는 ‘선함’이고, 다른 하나는 ‘선해 보임’이다. 사회는 전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2026. 1. 4.
교회는 왜 공동체 개념에 매몰되는가 교회는 왜 공동체 개념에 매몰되는가— 사회성의 불가피성과 교회의 불가능성 사이에서 인간은 사회 밖에 설 수 없다. 이 명제는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인간 이해의 기본 전제로 기능해 왔다. 인간은 언어, 관계, 제도, 몸을 통해서만 자신을 형성하며, 고립된 개인은 사유 속에서만 가능한 추상적 가설일 뿐이다. 사회학은 이 전제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왔고, 현대의 인간학 역시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이해한다. 문제는 이 사회성의 전제가 교회 이해로 그대로 이행될 때 발생한다.대다수 교회론은 무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도식을 따른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교회는 그 공동체의 종교적 형태라는 것이다. 이때 교회는 ‘기독교적 가치로 조직된 공동체’, ‘윤.. 2026.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