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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라이프니츠와 키르케고르 비교

엉클창 2025. 1. 27. 12:52

라이프니츠와 키르케고르를 비교할 때, “무(nothing)“와 독립, 자유”의 개념은 두 철학자의 차이를 핵심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최선의 세계와 실존적 결단이라는 대조를 넘어, 행위의 본질과 결과, 그리고 존재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층 더 심화된 비교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1. 라이프니츠: 최선의 세계와 선의 “완결성”

(1) 최선의 세계와 인간의 역할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최선의 세계는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인간은 이 섭리 안에서 조화로운 일부로서 선을 행합니다.
하지만, 그 선은 항상 하나님의 계획 속에 위치하며, 이는 결국 객관적 평가의 대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선행을 행하면 이는 “최선의 세계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칭송받을 수 있습니다.

(2) 무한성의 부재
라이프니츠의 체계는 유한한 평가와 찬사를 전제로 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최선의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이해되며, 이는 유한한 비교 가능성 안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최선의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그 행위는 보상을 받을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즉,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의 조화 속에서 인정받고 칭송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결과: 독립의 결핍
인간의 행위가 최선의 세계 속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된다는 것은, 인간이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서지 못함을 암시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종속된 일부로서 기능하며, 그의 최선조차 결국 찬사를 받을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2. 키르케고르: 무(nothing)와 독립

(1) 최선의 행위는 “무”로 돌아가는 것
키르케고르에게 진정한 선행은 인간이 무로 돌아가는 자기 비움을 포함합니다.
그는 “최선의 행위”는 결코 찬사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기를 내려놓는 행위이며, 이는 곧 무로 돌아가는 자기 부정을 요구합니다.

 

(2) 독립과 자유의 부여
키르케고르의 철학에서 선행은 상대를 독립적 존재로 세우는 것에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도 바라지 않아야 하며, 상대가 그 도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 비로소 선이 완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선을 행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없애는 무화(nothingness)**를 통해, 타인을 하나님과 직접 연결시킵니다.
이는 선을 행하는 자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도구”로 철저히 제한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3) 무한성의 도달
키르케고르에게 진정한 선은 무한성(infinity)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선을 행한 후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존재조차 지우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상대를 홀로 세운다”는 점에서 독립자유를 진정으로 부여합니다.

 

3. 결정적 차이: “찬사”와 “무화”

(1) 라이프니츠: 찬사받는 선
라이프니츠의 세계관에서는 최선의 행위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일부로서 인정받고 칭송될 수 있습니다.
최선의 행위는 세계의 조화 속에 포함되며, 이는 그 행위가 일정한 결과물로 평가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의 선은 보상받거나 기억될 가능성을 전제로 합니다.

 

(2) 키르케고르: 무화된 선
키르케고르의 철학에서 진정한 선은 자기 비움과 무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선을 행한 자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며, 상대가 독립적 존재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는 선을 행한 자가 찬사나 보상을 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합니다.

 

4. 두 관점의 종합적 비교

선행의 본질 최선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행위 자기 비움과 무화를 통해 상대를 독립적으로 세우는 행위
결과 인간의 선행은 보상받거나 찬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음 선을 행한 자는 무화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짐
자유와 독립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된 존재로서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음 선을 행한 자는 자신을 지움으로써 상대에게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부여함
무한성과 선 선은 조화 속에서 정의되며, 무한성보다는 유한한 체계 내에서 평가됨 선은 무화와 자기 비움을 통해 무한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진정으로 이루어짐
행위의 흔적 행위가 섭리의 일부로 인정받고 세계 속에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있음 진정한 선은 행위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상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음

 

5. 결론: 선과 무한성

라이프니츠와 키르케고르의 가장 큰 차이는 “최선의 행위”와 그 결과물에 대한 이해에서 드러납니다.

1. 라이프니츠는 선을 “최선의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보고, 그 행위를 보상받고 칭송받을 수 있는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2. 반면, 키르케고르는 선이란 **완전한 자기 비움과 무화(nothingness)**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며, 이는 상대에게 독립과 자유를 부여하기 위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라이프니츠의 체계적 세계관을 넘어, 선의 본질이 무한성과 비교 불가능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진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선을 행하는 자가 스스로를 완전히 지우는 희생적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궁극적으로 초월적인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