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관계 ]
│
┌────────────────────────┼────────────────────────┐
│ │
[ 위선 (Hykleri) ] [ 실족 (Forargelse) ]
│ │
1. 능동성을 통해 시작됨 1. 수동성을 통해 시작됨
2. 진리 앞에서 연기함 2. 진리 앞에서 ‘걸려 넘어짐’
3. 타인을 속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3. 외부에 의해 상처 입은 듯 보이나
실제로는 자신을 속이고 있음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짐
4. 자기 자신에게 실족한 상태 4. 자기 자신을 향한 위선의 상태
▼ ▼
위선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실족한 자는 진리를 회피하며
단절되어 있고, 실족의 상태를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실족’한 존재 ‘자기 자신에게 위선’을 행함
▼ ▼
결국 스스로를 직면하지 못하고, 진리를 향한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내면성 없는 상태에 머묾 스스로 진리를 가로막는 자가 됨
▼ ▼
모든 위선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모든 실족은 결국 타인에게
위선하는 상태로 귀결됨 위선하는 자로 전락함
실족과 위선의 변증법은 키르케고르의 실존 분석 안에서도 매우 정교하게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의지의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우리는 실족(Forargelse)과 위선(Hykleri)을 다음과 같은 의지의 이중 구조 또는 무의식의 방어 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
🔍 실족과 위선의 변증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기
1. 실족(Forargelse) – 무의식적 저항으로서의 수동성
• 실족은 외부로부터 받은 충격, 즉 진리의 출현 앞에서의 내면적 충돌로 시작된다.
•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수동적인 반응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수동성은 의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의지의 활동이다.
•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무의식적 저항(resistance)이다. 진리에 직면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 나는 상처를 받았으므로 거기에 머무른다 ❞→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상처에 의한 수동적 상태처럼 보이나,실제로는 ‘내가 그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무의식적 결정’이 개입되어 있음.
2. 위선(Hykleri) – 무의식의 자기기만으로서의 능동성
• 위선은 더 분명한 의식적 능동성을 띱니다. 신앙인 척하거나, 진리의 편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가장한다.
• 하지만 이 역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 ‘나는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가면을 씀으로써 자기기만(self-deception)을 강화하며, 실제의 실족 상태를 은폐한다.
❝ 나는 진리에 속해 있다 ❞→ 사실은 진리를 회피하고 있으나, 무의식 속에서 그 회피를 은폐하기 위한 적극적 능동성이 나타나는 것.
🧠 실족 ↔ 위선의 변증법은 의지의 이중 구조로 움직인다
측면 | 실족 (Forargelse) | 위선 (Hykleri) |
표면적 상태 | 수동적 고통, 진리에 대한 거부 | 능동적 신앙 또는 윤리적 태도의 가장 |
무의식적 구조 | 진리와의 충돌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적 저항 | 실족의 은폐를 위한 무의식적 자기기만 |
의지의 작용 | 의지를 거부하는 의지 (Nietzsche가 말한 ‘반-의지’) | 자기기만을 유지하려는 의지 |
실존적 효과 | 진리를 향한 폐쇄성, 내면의 정지 | 진리를 향한 외면적 수행이지만, 실질적 부정 |
최종 귀결 | 자기 자신에 대한 위선 | 자기 자신에 대한 실족 |
🧩 정리: 의지와 무의식의 역설적 구조
• 키르케고르의 실존 개념은 이미 의식적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 결단이 어떻게 회피되고 왜곡되는지를 매우 섬세하게 분석합니다.
•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이 실존적 구조는 곧 “의식을 벗어난 의지의 행위”, 즉 무의식적 의지의 왜곡된 표현입니다.
• 위선과 실족의 변증법은 바로 이러한 의지의 분열된 구조, 또는 진리에의 욕망과 그것에 대한 공포 사이의 긴장에서 발생합니다.
📚 연결 지점
• 프로이트적으로는 **방어기제(예: 부인, 억압, 반동형성)**로 설명될 수 있으며, 라캉적으로는 “진리로부터의 분열된 주체”, 또는 상징계에서의 허구적 동일화로 볼 수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절망 속의 자기”이며,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실존의 병입니다.
'철학 > 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우스트의 마법의 거울 해석 (0) | 2025.04.04 |
---|---|
피히테의 주관성과 키르케고르의 주관성 비교 (0) | 2025.04.04 |
이것이냐 저것이냐 1부 황홀한 연설에서 (0) | 2025.03.06 |
불안의 개념 4장, 셸링, 행위의 천재에 대한 해설 (1) | 2025.03.03 |
광적인 회개와 엔도 슈사쿠의 기치지로 (0) | 202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