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우스

유발하라리와 키르케고르의 역사 인식 본문

철학/사상

유발하라리와 키르케고르의 역사 인식

엉클창 2024. 10. 25. 22:37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발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그가 지향하는 개별적 실존의 차원에서 비판될 여지가 많다. 하라리는 역사 속에서 인간 집단이 공동의 상상의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생존과 발전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틀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은 헤겔식 역사 인식에 가까운 관점을 반영하며,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1. 개인보다 집단에 초점을 맞춘 역사 인식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인간 집단이 어떻게 협력해 왔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공동의 신화, 종교, 이념 같은 상상의 질서가 집단적으로 발전하면서, 인류가 문명을 형성하고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통해 인류의 성장은 사회적 합의와 집단적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반면, 키르케고르는 개별적 실존의 진리를 최우선으로 본다. 그는 집단적 사고나 보편적 역사 속에서 개인의 주체성이 희석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개별자가 아닌 집단적 사고와 협력의 산물로 인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실존적 고유성과 주체적 결단을 간과하는 문제를 가진다. 키르케고르에게 중요한 것은 집단적 흐름이 아니라, 개별자가 자신과 직접 마주하는 절대적 순간과 결단이다.

 

2. 보편적 발전 서사 vs. 개별적 실존의 비약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선형적 발전 과정으로 바라보며, 인류가 상상의 질서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더 높은 수준의 협력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은 헤겔적 보편사와 유사하게, 인류가 어느 정도 목적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는 서사를 강조한다. 하라리는 특히 과학 혁명 이후 인간이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며 인류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시한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보편적 발전 서사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실존 철학에서 발전은 객관적 진보가 아니라, 개별자가 실존적 결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키르케고르의 입장에서 하라리의 서사는 집단적 발전의 법칙에 따라 개인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개인의 주체적 결단이나 실존적 도약을 간과할 위험이 크다. 특히 키르케고르가 강조하는 “순간”의 중요성은 하라리의 선형적 발전 서사에서 크게 희석된다.

 

3. 상상의 질서 vs. 절대적 실존의 진리

하라리는 종교, 이념, 법 등 상상의 질서가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었고, 이 질서들이 인간의 협력과 조직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개념들이지만,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라고 본다.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이런 상상의 질서는 절대적 실존의 진리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는 상상의 질서가 개인의 삶에서 참된 의미를 제공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키르케고르는 절대적 진리란 하나님의 앞에서 각자가 주체적으로 맞닥뜨리는 고유한 진리라고 보았고, 이는 사회적이거나 보편적인 질서가 아닌, 오직 개별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실존적 진리이다. 하라리의 상상의 질서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허구의 구조일 뿐이며,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주체적인 결단과 개별적 실존의 참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피상적 구조로 평가될 수 있다.

 

4. 불안과 실존적 도약의 부재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불안은 인간이 자신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마주할 때 경험하는 실존적 감정이다. 이 불안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이 실존적 결단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생성해 나가는 시작점이다. 그러나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개인의 불안이나 실존적 도약보다는 집단의 협력과 상상의 질서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보하는 인류의 이야기를 중시한다.

하라리의 서사에는 개별자의 실존적 도약이나 초월적 결단의 순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류는 상상의 질서 속에서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의해 진보해 나간다. 이 관점에서 키르케고르는 하라리의 역사 인식이 인간의 참된 실존적 가능성과 불안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개인이 불안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존재를 초월하는 것을 중시하지만, 하라리의 서사에서는 이런 실존적 순간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결론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발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개별적 실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놓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라리의 역사 인식은 인류의 집단적 협력과 발전을 강조하며, 인간을 집단적 상상의 질서 속에서 설명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인간 실존의 핵심은 각자의 주체적 결단과 실존적 진리에 있으며, 이는 보편적 발전 서사나 집단적 협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본다. 하라리의 서사는 키르케고르에게 인간 실존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집단주의적 서사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