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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인물

경건주의, 에크하르트와 불교, 키르케고르

엉클창 2024. 11. 6. 19:48

 

경건주의적 신비주의(Qietistic mysticism)는 영적 평온과 내적 고요를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전통입니다. 이 사상은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상태를 추구하며, 이러한 내적 평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경건주의는 종종 인간의 활동적인 종교적 노력보다는 내면의 침묵과 영혼의 수동적 상태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합니다.

경건주의는 특히 17세기의 스페인 신비주의자 미겔 데 몰리노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프랑스의 마담 귀용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개인의 열정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를 배제하고, 내적 침묵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영혼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되며,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온전한 의존을 이루게 됩니다.

경건주의는 중세 신비주의와 연관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자기 희생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경건주의적 신비주의는 관련이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영적 고요와 내면의 비움을 강조했으며, 이는 조용주의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자기 의지를 완전히 버리고 내적 고요 속에 머무를 것을 가르쳤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은 "영혼의 비움(Gelassenheit)"입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버릴 때,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이후 여러 신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경건주의적 신비주의의 철학적, 신학적 배경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특히, 에크하르트의 “신적 무(無)” 개념과 인간의 내면적 평온이 경건주의와 비슷합니다. 경건주의가 신 앞에서 인간의 영혼이 수동적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는 경건함을 설파했습니다.

에크하르트와 경건주의 모두 영혼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고요히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에크하르트는 경건주의보다는 더 능동적 차원의 신비적 사유를 중시한 면이 있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불교와 흥미로운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에크하르트의 내적 비움(Gelassenheit)"과 "불교의 무아(無我)"와 같은 개념이 그러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인간이 자기 중심적인 욕망과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불교에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접근과 유사합니다.

불교에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이 고통의 해탈로 이어진다면, 에크하르트는 자아를 비움으로써 신성과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고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의 ‘비움’의 개념은 불교의 무상(無常)과 무아를 연상케 하는데, 불교에서 영혼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일체의 현상은 고정된 자아가 없이 변화한다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에크하르트의 신과의 합일은 불교의 열반 혹은 깨달음과도 유사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인간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고요한 상태에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으며, 이는 불교에서 모든 번뇌와 집착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본래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전제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적 체계 속에 있으므로 불교의 무신론적 접근과는 다릅니다.


키르케고르는 신비주의 전통에서 본받음(따름)의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생기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신비주의가 그리스도

를 본받는다는 것을 종종 실제적이고 외적인 방식으로 오해하여, 마치 구원에 이르는 길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나 고행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원이나 신비주의적 전통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가난, 겸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완전함을 이루는 방법으로 강조되었습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접근이 은혜의 핵심을 왜곡한다고 느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내적 연합을 통해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물리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화해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비주의 전통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의 노력이나 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태도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계한 것입니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은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적 본받음이 자칫 인간 중심적이거나 성취 중심적인 구원관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몰리노스에 대하여

스페인의 경건주의자 **미겔 데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 1628–1696)**는 **경건

주의(Quietism)**의 대표적인 신비주의자로, 그의 사상은 내적 고요와 영적 수동성을 강조합니다. 몰리노스는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데 있어 모든 인간적 노력과 의지를 내려놓고 완전히 내적 평온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영혼의 안내(Guía espiritual, 1675)에서 이러한 개념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몰리노스에 따르면, 영적 삶의 목표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모든 욕망과 자기 의지를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완전한 수동성을 통해 영혼은 하나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멈추고,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버림으로써 신적인 빛과 은혜가 내면에서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몰리노스의 조용주의 사상은 특히 고통과 시련을 수용하는 자세를 강조하며, 인간의 노력을 통한 구원의 추구를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는 영혼이 자기 노력을 통해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고난을 영혼의 정화를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큰 반발을 받았습니다. 1687년에 몰리노스는 이단 혐의로 로마 교회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의 책은 금서 목록에 올랐습니다. 몰리노스는 영적 수동성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종교적 의무를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몰리노스의 조용주의가 실천적 신앙을 약화시키고, 죄와의 싸움을 방관하게 한다고 우려했습니다.

몰리노스의 사상은 이후에도 영적 수동성과 내적 평온을 중시하는 여러 신비주의자와 경건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과도한 수동성이 신앙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로 인해 기독교 내에서 논쟁적인 위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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