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Augustine),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그리고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모두 시간과 영원이라는 주제를 신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다뤘지만, 각자의 시대적, 신학적 배경에 따라 접근 방식과 강조점이 다릅니다. 이들의 관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참고서적:
선한용. ⟪시간과 영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특히, 제14장 현대 사상가들과의 비교를 참고하라.
오스카 쿨만. ⟪그리스도와 시간⟫. 김근수 역. 서울: 나단 출판사. 2005.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임규정 역. 서울: 한길사. 1999.
쇠렌 키르케고르. ⟪철학의 부스러기⟫. 표재명 역. 서울: 프리칭아카데미. 2007.
쇠렌 키르케고르. ⟪고난의 기쁨⟫. 이창우 역. 세종: 카리스아카데미, 2022(개정판).
1. 시간의 본질
어거스틴:
• 시간의 내면성: 어거스틴은 『고백록』 11권에서 시간을 인간의 내면적 경험으로 이해합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객관적 구조보다 인간의 의식 속에서 기억(과거), 주의(현재), 기대(미래)로 나타납니다.
• 시간은 창조된 실재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유한한 세계의 속성입니다.
• 시간은 영원의 모방이며, 영원은 진정한 실재입니다.
쿨만: "모든 계시는 본질적으로 시간에 정박하고 있다."([그리스도와 시간], 64쪽)
• 구속사적 시간: 쿨만은 시간을 선형적 구조로 보며, 창조에서 종말까지의 구속사적 진행으로 이해합니다.
• 시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진행되는 역사적 틀로, 그리스도 사건이 시간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 시간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을 담는 무대입니다.
*참고: 구속사로 이해한다는 것은 구원론과 다릅니다. 구속사는 공동체적 이해고, 구원론은 개인적 측면의 이해입니다.(송영재, ⟪더 뉴커버넌트 신학⟫, 69쪽)
키르케고르:
• 시간의 존재론적 차원: 키르케고르는 시간을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영원의 긴장 속에서 이해합니다. 즉, 시간과 영원은 상호 보완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 시간은 인간이 실존적 결단을 내리는 장이며, ‘영원의 순간’을 통해 인간은 신과의 관계에서 시간의 유한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순간은 대척점에 있는 이질적 시간과 영원의 종합입니다. 이런 점에서 순간은 "영원의 원자"입니다.
• 시간은 내적 투쟁과 결단의 영역으로, 현재는 실존적 변화를 이루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2. 영원의 개념
어거스틴: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을 초월한 무시간성이다."
• 영원은 하나님 자신이며, 시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완전하고 변치 않는 실재입니다.
• 영원과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은 시간 안에 있지 않습니다.
• 시간은 영원으로부터 흘러나왔으며, 영원 속에서 완성됩니다.
쿨만: "성서 기자가 하나님의 영원성을 말할 때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시간적 개념을 사용하여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
• 영원은 시간을 초월하지만,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시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 영원은 종말론적 완성으로, 시간은 영원 속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 영원과 시간은 단절되지 않으며, 구속사적 관계 안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즉, 영원이란 시간(시대)의 끝없는 연속입니다.
선한용: "따라서 쿨만이 초대 그리스도교는 무시간적인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 것은 해석학적인 문제가 있다."([시간과 영원], 191쪽)
키르케고르:"나무의 나이는 나이테에 의해 알려지듯, 인간의 영적 나이는 회개와 후회의 나이테에 의해 알려진다."([마음의 청결]) 즉, 키르케고르에게 후회와 회개의 운동은 시간의 운동이 아니라 영원의 운동입니다. 따라서 전도서 3장이 만물이 때와 회개와 후회의 때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은 일종의 카이로스의 때이며, 순간 속의 영원입니다.
• 영원은 인간이 신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실존적 초월성입니다.
• 영원은 시간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결단의 순간’을 통해 드러납니다.
• 영원은 존재론적이며, 실존적 선택과 신앙 속에서 체험됩니다.
3. 시간과 영원의 관계
어거스틴:
• 시간과 영원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시간은 유한하고 변화하며, 영원은 무한하고 변치 않습니다.
• 그러나 시간은 영원의 그림자이자 반영으로, 인간은 영원을 향해 나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 시간의 목적은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쿨만:
• 시간과 영원은 구속사적 긴장 속에서 연결됩니다. 영원은 시간의 바깥에 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시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시간은 영원으로 향해 나아가며, 종말에서 영원으로 완성됩니다.
• 시간은 역사의 선형적 과정이며, 영원은 이 과정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키르케고르: "떡갈나무를 화분에 심으면 깨지듯이, 깨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그룻에 진리를 심을 수 있는 것일까?"[철학의 부스러기]
• 시간과 영원은 실존적 긴장 속에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 있지만, 영원의 순간을 통해 초월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시간적으로는 현재는 선으로도 표시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인간은 이 순간 속의 영원을 경험합니다.
• 영원은 시간의 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결단과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 시간은 유한성과 결단의 장이며, 영원은 이러한 결단 속에서 경험되는 실존적 현실입니다.
4. 그리스도의 역할
어거스틴:
• 그리스도는 영원의 하나님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존재로, 인간이 영원으로 나아갈 길을 제공합니다.
• 영원과 시간의 연결고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쿨만:
• 그리스도는 시간과 영원을 연결하는 구속사적 중심점입니다.
•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은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온 사건이며, 이를 통해 시간은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키르케고르:
• 그리스도는 시간 속에서 영원의 본질을 드러내는 존재론적 본보기입니다. 따라서 제자도가 강조됩니다.
• 인간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모방하고, 이를 통해 영원의 순간을 체험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코람데오)를 확립합니다.
5. 공동체적 vs 개인적
-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개인적 구원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시간은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영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 쿨만: 쿨만은 시간과 영원의 관계를 공동체적 구속사 속에서 설명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합니다.
-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는 철저히 개인적 실존을 강조합니다. 시간과 영원의 문제는 각 개인이 신 앞에서 홀로 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요약 비교
측면 | 어거스틴 | 쿨만 | 키르케고르 |
시간의 본질 | 인간 내면의 의식 속에 존재 | 구속사적 선형 구조 | 실존적 결단의 장 |
영원의 본질 |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실재 | 종말론적 완성으로 나타나는 구속의 실재 | 신과의 관계 속에서 체험되는 초월성 |
관계 | 질적으로 단절된 두 차원 | 그리스도를 통해 조화 실존적 긴장 | 실존적 긴장, 현재 순간에 체험 |
그리스도의 역할 | 영원과 시간을 연결하는 성육신 | 구속사적 연결, 그리스도를 통해 조화 | 실존적 모델, 영원의 본질을 드러냄 |
초점 | 개인과 교회의 영원한 완성 | 구속사와 공동체의 종말론적 완성 | 개인의 실존적 결단과 신앙 |
결론
어거스틴은 시간과 영원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시간의 유한성과 영원의 완전성을 구분합니다. 쿨만은 시간과 영원을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속사 속에서 이해하며, 키르케고르는 이를 실존적이고 개인적 결단의 맥락에서 설명합니다. 각자의 관점은 보완적일 수 있으며, 시간과 영원의 문제를 신학적, 철학적으로 풍성하게 조명합니다.
'성경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 기억, 그리고 하나님 나라 (0) | 2024.12.01 |
---|---|
창조, 기독교, 그리스철학, 고대근동의 차이 (2) | 2024.11.26 |
언약적 사랑과 의무의 사랑 (0) | 2024.11.23 |
완전한 동일성, 부분적 동일성; 부활한 몸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 (1) | 2024.11.16 |
구약에서의 불멸의 교리에 관한 고찰, Not1:6에 대한 해설 (0) | 2024.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