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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어거스틴의 시간의 창조와 그리스 철학 개념 비교

엉클창 2024. 11. 28. 10:03

 

그리스 철학의 시간 개념은 어거스틴이 제시한 시간이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적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은 대개 세계 질서와 함께 본질적으로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어거스틴과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플라톤의 시간 개념

플라톤의 철학에서 시간은 영원의 모방으로 설명된다.

시간과 영원의 관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시간은 코스모스의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이는 영원의 움직이는 형상으로 간주된다. 천병희 번역본의 ⟪티마이오스⟫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티마이오스⟫, 천병희 역 (파주: 숲, 2019), 339쪽(37d)를 참고하라.)

하지만 생명체의 본성은 영원한 것이기에 이를 생성된 것에 완전하게 부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영원의 움직이는 모상(eikon, 형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지요. 그리하여 그분은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는 동시에 단일성 속에 머무르는 영원의, 수에 따라 진행되는 영원한 모상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이 수에 '시간(chrono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플라톤은 영원을 변화 없는 완전한 상태로 보았고, 시간은 그것의 불완전한 모사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시간은 태양, 달, 행성들의 주기를 통해 수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이 시간을 구성한다.

시간은 필연적:
플라톤에게 시간은 존재의 본질적 조건 중 하나로, 코스모스의 영속성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플라톤 철학에서는 시간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지 않으며, 세계의 질서와 함께 영속적으로 존재한다.

 플라톤은 시간과 우주가 동시에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시간은 우주의 “움직임(운동)”과 관련된 개념으로, 영원(eternity)의 움직이는 형상(moving image)으로 이해된다.

위의 책, ⟪티마이오스⟫, 37e-38a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주가 생겨나기 전에 주야도 연월도 없었는데, 그분은 우주가 구성되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을 창조할 구상을 했으니까요. 이것들은 모두 시간의 부분들이고 '있었다'와 '있을 것이다'는 생겨난 시간의 양상들인데,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를 영원한 존재에 잘못 적용하고 있어요. 우리는 영원한 존재가 '있었다'와 '있다'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있다'만이 진실로 영원한 존재에 걸맞는 표현입니다. '있었다'(과거)와 '있을 것이다'(미래)는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 생성에 사용하기 적절한 표현이지요. 이 둘은 운동이니까요.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언제나 같은 것은 시간의 경과 때문에 더 늙을 수도 더 젊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런 적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중략) 이처럼 시간은 우주와 함께 생겨났으며, 이들은 동시에 생겨난 만큼 해체될 때에도 동시에 해체될 것입니다.

우주는 변화하는 세계이며, 시간은 이러한 변화의 구조를 제공한다.

영원과 시간의 구분:
영원(eternity)은 “변화가 없는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며, 이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반영으로서, 생성과 변화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이는 “있었다”(과거), “있을 것이다”(미래)와 같은 시간적 표현과 연결된다.

운동의 성격:
시간은 본질적으로 운동과 변화의 산물이며, 우주의 질서와 관련이 깊습니다. 하지만 영원은 이러한 운동과 구분되어 항상 동일한 상태로 존재한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운동(movement)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간을 이해한다.

시간은 운동(변화)와 밀접하게 연결: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Physics)*에서 시간을 변화의 수량적 측정으로 정의한다. 그는 시간을 “앞선 것과 뒤에 오는 것 사이의 숫자적 관계”로 설명한다.
시간은 변화와 분리될 수 없으며, 운동(움직임)의 연속성에서 비롯된다.

시간의 창조라는 개념 부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우주의 영속성을 가정했다. 그는 우주와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어거스틴이 말한 “시간이 창조되었다”는 관점과 정면으로 대립된다.

 

3. 스토아 철학의 시간 개념

스토아 철학에서는 시간도 자연의 본질적인 일부로 간주된다.

시간은 세계 질서의 일부:
스토아 철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세계의 내재적 특성으로 이해했다.
시간은 우주의 필연적 순환과 연결되어 있으며, 대우주(코스모스)의 질서가 유지되는 동안 시간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주기적 시간:
스토아 철학에서 시간은 직선적이기보다는 주기적(cyclical)이며, 우주의 반복적 생성과 소멸 과정 속에서 시간 역시 순환한다.

 

4. 그리스 철학과 어거스틴의 차이

그리스 철학과 어거스틴의 시간 개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어거스틴의 시간 개념:
시간은 세계 창조와 동시에 창조된 피조물이다.
이는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창조 이전에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직선적이며 종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는 기독교적 종말론과 깊이 연결된다.

어거스틴은 시간은 우주와 함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시간은 피조물의 일부이며, 창조 이전에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플라톤의 시간과 우주의 동시 창조와 유사하지만, 어거스틴은 이를 신의 의지와 초월적 행위와 연결시킨다.

영원과 시간의 구분:
어거스틴에게 영원은 신의 본질적 속성이며, 하나님은 시간과 관계없이 존재한다. 플라톤이 영원을 “시간적 변화가 없는 상태”로 설명한 것과 유사하지만, 어거스틴은 이를 더욱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신의 속성으로 강조한다.

시간의 내면적 성격:
어거스틴은 고백록 11권에서 시간의 본질을 논하면서, 과거와 미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현재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조차도 연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경험된다.
그는 시간의 경험을 인간의 내면적 의식과 연결시키며,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 안에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 성립된다고 본다. 이는 플라톤이 제시한 “운동과 변화”의 시간적 속성과 차별화된다.

그리스 철학의 시간 개념:
시간은 우주와 더불어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창조라는 개념은 부재하며, 시간은 자연적 과정 속에서 영속적으로 유지된다.
시간은 순환적이거나 주기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5. 어거스틴이 플라톤을 재구성한 방식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시간 개념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재구성했다.

시간의 목적:
플라톤에게 시간은 우주의 질서와 관련된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었지만, 어거스틴에게 시간은 창조와 구속, 종말의 신학적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은 직선적이며, 창조에서 시작해 종말로 향하는 구속사의 배경이 된다.

영원과 시간의 관계:
플라톤은 시간과 영원을 “운동과 정지”의 관계로 설명했지만, 어거스틴은 영원이 시간을 초월하며, 시간이 영원의 통제 아래 있음을 강조한다.
영원은 신의 속성이며, 시간은 피조물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도구이다.

인간 중심의 시간 이해:
어거스틴은 시간을 인간의 내면적 경험과 연결하며, 인간의 구속과 영혼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시간을 논의한다. 이는 플라톤의 비개인적이고 우주적 관점과 차별화된다.

 

결론: 창조적 시간 개념의 부재

그리스 철학에서는 시간의 기원이나 창조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존재의 기본 조건으로 이해했으며, 이는 어거스틴의 시간은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관점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이러한 차이는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계관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하나님의 의지와 연결된 피조물로 보았지만, 그리스 철학은 시간을 우주 자체의 본질적 일부로 간주했다.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시간 개념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이를 기독교적 신학 체계에 맞게 재구성
플라톤의 시간은 우주 질서와 자연법의 일부로 설명되며, 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어거스틴은 시간과 영원의 관계를 신과 피조물의 관계로 전환하고, 시간에 구속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플라톤적 시간 개념을 단순히 수용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변형하고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과 비교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은 어거스틴이나 플라톤의 시간 개념과 중요한 차이를 가지며, 특히 시간과 영원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차이를 정리할 수 있다.

 

1. 플라톤/어거스틴의 시간과 영원의 관계

플라톤: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형상(moving image of eternity)이다. 시간은 우주의 질서와 변화의 틀을 제공하며, 영원은 변화 없는 완전한 상태로 이해된다. 시간은 영원의 “반영”이자 파생된 것이다.

어거스틴: 시간은 창조된 세계의 일부이며, 영원은 신의 초월적 본질이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으로 보며, 시간은 영원한 신의 계획과 목적 아래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시간의식 자체는 인간의 내면적 반성 속에서 경험된다.

 

2.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

키르케고르는 플라톤이나 어거스틴처럼 시간을 단순히 영원의 파생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시간을 개인의 실존적 결단과 책임의 영역으로 이해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시간 의식의 발생: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시간의식은 영원과의 반성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즉, 시간은 단순히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적 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이 시간 속으로 “침투”할 때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통해 의미화된다.

시간은 단순히 “연속적 흐름”이 아니며, 개인의 “순간”(Øieblikket)을 통해 결정적으로 변형된다. 이 “순간”은 영원의 개입과 인간의 결단이 만나는 지점이다.

시간의 구분 비판:

• 키르케고르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시간 자체의 본질로부터 나온다고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런 구분은 시간의 본질이 아니라, 영원이 시간에 반영될 때 발생하는 “관계적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간의식은 영원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발생하며, 순수한 시간 자체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이 성립하지 않는다.

실존적 결단과 시간:

키르케고르에게 시간은 개인이 영원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실존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무대로 작용한다. 이 결단의 순간은 단순히 시간적 연속에서의 한 점이 아니라, 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3.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과 어거스틴/플라톤의 차이

시간과 영원의 관계:

어거스틴과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의 파생적 구조로 본다. 시간은 변화와 운동의 영역이고, 영원은 초월적이고 정적인 상태이다.

키르케고르는 영원과 시간이 만나는 “순간”에 주목하며, 이 만남을 통해 시간은 실존적으로 의미를 얻는다. 영원은 시간의 근원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실존적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반성적 관계로 작용한다.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비판:

플라톤과 어거스틴은 시간의 연속성을 인정하며, 이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한다.

키르케고르는 시간의 연속성을 부정하며, 이를 단순히 인간의 “표상”으로 간주한다. 그는 시간의 본질은 연속성이 아니라, 결정적 순간(순간과 영원의 만남)에 있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실존적 의미:

어거스틴은 시간을 신학적 구속사 속에서 이해하며, 시간은 신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작용한다.

키르케고르는 시간을 개인의 실존적 결단과 책임의 장으로 강조하며, 시간의 의미는 각 개인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

 

4. 결론: 키르케고르의 독창성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은 플라톤과 어거스틴의 관점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시간을 단순히 영원의 파생적 구조로 보지 않고, 영원과 시간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강조한다.

따라서,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은 플라톤적-어거스틴적 전통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특히 헤겔의 시간과 영원에 대한 관점(시간을 부정성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도전으로도 작용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무대이며, 이는 실존적 결단과 책임을 통해 의미를 얻는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개념은 중요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특히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두 전통의 철학적 기반과 목적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 그리스 철학: 시간과 공간의 밀접한 연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철학은 시간을 주로 운동과 공간에 연관된 개념으로 이해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

시간과 운동: 시간은 공간에서의 운동을 통해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간은 “운동의 숫자화된 척도”입니다. 즉, 운동이 없다면 시간도 감지되지 않으며, 시간은 운동 속에서 “이전(before)“과 “이후(after)“라는 연속성을 통해 경험된다.

시간과 공간의 유사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모두 외부 세계의 질서를 반영한다. 시간은 공간적 운동의 속성으로, “나열된 순서”(nacheinander, 연속성)의 형태를 띤다. 따라서 시간의 본질은 객관적이고 물리적이다.

테네만의 해석: 테네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요약하면서 “시간의 개념은 운동의 연속성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시간은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운동의 속성으로, 공간적 특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제4권에서 시간을 운동(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연관하여 정의한다. 이에 대해 W.G. 테네만은 그의 저서 철학의 역사(1801) 제3권, 139쪽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전과 이후의 개념은 원래 공간에서 비롯되며, 따라서 운동과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 운동에서는 하나가 다른 것 뒤를 잇는 것이 본질을 이룬다. 이를 별도로 상상할 때 시간의 개념이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은 본질적으로 외적이고 물리적이며, 공간의 속성과 동일한 논리를 따른다. 시간은 공간적 운동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체와 분리된 객관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2. 아우구스티누스: 시간의 내면화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며, 이를 내면적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개념

시간과 내면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은 인간의 내면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이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인간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작용이라고 본다.

현재의 순간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재”가 시간의 본질적 측면이며, 현재는 너무 짧고 빠르게 지나가므로 “연장되거나 확장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를 연장하려는 시도는 곧 공간적 논리에 빠지게 되고, 이는 시간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본다.

시간과 영원의 관계: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영원과 대비시킨다.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하나님이라는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영원은 변하지 않는 신의 본질이고, 시간은 변화를 경험하는 피조 세계의 속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 (Confessiones) 제11권, 15장에서 시간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며, 위 내용과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만약 시간이 아무리 작더라도 순간들로 나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면, 그것은 오직 ‘현재’로 불릴 수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현재조차도 미래에서 과거로 너무 빠르게 날아가서 그 어떤 시간의 길이도 연장될 수 없다. 만약 연장된다면, 그것은 과거와 미래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무런 ‘공간’(spatium)을 가지지 않는다.”

여기서 “spatierer”란 라틴어 spatium에서 파생된 말로, ‘공간을 부여하다’, ‘연장하다’는 뜻이다. 시간의 현재를 공간적으로 연장하거나 확장하려는 시도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이다.

결과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내면적이고 주관적이며, 인간 마음과 의식의 구조에서 출발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시간은 영원의 반영이 아니라, 창조된 세계의 한계 내에서 발생하는 존재의식과 관련된다.

 

3. 시간 개념의 주요 차이

구분 그리스 철학 아우구스티누스
시간의 본질 시간은 공간적 운동과 밀접히 연관된 객관적 실재 시간은 인간의 내면적 경험에서 비롯된 심리적, 주관적 개념
현재의 성격 현재는 이전(before)과 이후(after) 사이의 “경계선” 현재는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으로, 공간적으로 연장될 수 없음
시간과 공간의 관계 시간은 공간과 동일한 논리를 따르며, 공간적 속성으로 설명 가능 시간은 공간적 속성과는 독립적이며, 마음의 작용과 관련 있음
시간과 영원의 관계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형상”으로, 영원의 질서를 반영 시간은 영원과 대조되며, 변하지 않는 영원의 초월성과 대비됨

 

4.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과의 연관성(불안의 개념 3장을 참고하라)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며, 그리스 철학적 전통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내면성의 강조: 키르케고르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시간을 주관적, 내면적 경험으로 이해하며, 시간은 단순히 외부적이고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영원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고 본다.

현재와 순간의 중요성: 키르케고르는 “순간”(Øieblikket)을 통해 현재가 단순히 연속적 시간의 한 점이 아니라, 영원과 만나는 실존적 사건으로 정의한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현재의 순간성”과 유사한 개념이다.

시간과 영원의 관계: 키르케고르는 시간을 단순히 영원의 반영으로 보지 않고, 시간과 영원이 실존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5. 결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의 시간 개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를 내면화하고 신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시간을 단순히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영원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내면적 경험으로 이해했다.

키르케고르의 시간 개념은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유사하지만, 실존적 결단과 책임을 중심으로 더 발전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반면, 그리스 철학의 시간 개념은 시간과 공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며, 객관적이고 외부적 실재로서의 시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