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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 24:57, Pap. X4 A 306, 고요한 시간, 외재적 교회의 역할 본문
NB 24:57, Pap. X4 A 306
“고요한 시간”
교회에서의 고요한 시간, 그것이 종교적 경건(religieusitet)의 최고점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훈련의 시간이다. 이를 통해 당신은 종교적인 것을 현실 속에 적용하도록 배운다. 그 점에서 교회의 참된 의미, 즉 교회에서의 고요한 시간의 참된 의미는 궁극적으로 교회를 불필요하게(superfluous) 만드는 것에 있다. 비록 우리가 결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또는 여전히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유익할지라도, 그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바이올린 연주자를 생각해 보라. 만약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바로 오케스트라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려 한다면, 그는 스스로 방해를 받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방해할 것이다.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고요한 시간, 즉 연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에는 가능한 한 방해가 없다. 그는 앉아서 박자를 세고, 음악의 기본을 연습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각기 다른 악기의 소리가 교차하고, 다양한 소리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조용하고 확실하게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마치 혼자 자신의 방에서 연습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요한 시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종 목표(τέλος)는 항상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종교적인 사람도 그러하다.
해설
“고요한 시간(De stille Timer)”
“De stille Timer”는 야콥 피터 뮌스터(Jacob Peter Mynster)가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의미하며 자주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는 개인의 은밀한 기도 장소(기도의 골방)에서나, 교회 예배 중에서의 고요한 순간을 지칭합니다.
참조 출처
다음 저작에서 이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1.『기독교 신앙 교리에 대한 고찰(Betragtninger over de christelige Troeslærdomme)』,
2판, 코펜하겐, 1837 [초판 1833] 제1권, 240쪽; 제2권, 298쪽, 299쪽, 301쪽, 306쪽
2.『주일과 성일 설교집(Prædikener paa alle Søn- og Hellig-Dage i Aaret)』,
3판, 제1~2권, 코펜하겐, 1837 [초판 1823] 제1권, 8쪽, 38쪽, 215쪽, 384쪽; 제2권, 127쪽
3.『교회력에 따른 설교집(Prædikener holdte i Kirkeaaret 1846-47)』, 코펜하겐, 1847, 52쪽, 63쪽
4.『1848년 설교집(Prædikener holdte i Aaret 1848)』, 코펜하겐, 1849, 10쪽, 11쪽, 14쪽
5.『1849~1850년 설교집(Prædikener holdte i Aarene 1849 og 1850)』, 코펜하겐, 1851, 204쪽, 216쪽
키르케고르가 “고요한 시간들”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논한 내용을 통해 볼 때, 그는 궁극적으로 외재적 교회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교회가 단지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도구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개인의 내적, 실존적 신앙을 완성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역할과 개인적 신앙
1. 훈련의 장소로서의 교회
• 키르케고르는 교회의 예배와 고요한 시간들이 훈련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 이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혼자 연습을 통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준비를 하는 것”과 같으며, 궁극적으로 개인이 현실 속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2. 교회의 한계와 그 너머
• 그는 교회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교회가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 고요한 시간들의 목표는 “교회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 즉 개인이 교회를 벗어나도 신앙적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3. 외재적 교회와 내재적 신앙
• 외재적 교회(제도적, 가시적 교회)는 개인의 내재적 신앙과 실존적 결단을 돕는 도구로 존재합니다.
•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교회가 형식적, 제도적으로만 기능할 때 참된 기독교 정신에서 멀어질 위험을 경계했습니다.
외재적 교회 없이 살아가는 의미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외재적 교회 없이 사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개인의 신앙 독립성
• 교회 의존 없이 개인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지향합니다.
• 이는 루터가 말한 “만인사제설”과도 연결되며, 각 신자가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2. 교회의 도구적 역할 초월
• 교회는 훈련의 장소로 필요하지만, 신앙의 완성은 교회를 초월한 개인과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3. 교회의 영적 본질 회복
• 키르케고르는 외재적 교회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교회가 형식적·제도적 틀을 넘어 개인의 실존적 신앙을 돕는 역할로 회복되길 원합니다.
결론
키르케고르는 외재적 교회의 완전한 부정보다는, 외재적 교회를 통해 개인이 실존적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논지는 **“외재적 교회를 넘어선 내재적 신앙의 성숙”**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교회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강건한 신앙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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