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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31:54, Pap. XI1 A 384기독교에 따른 존재(Tilværelsen) 법칙 본문
NB31:54, Pap. XI1 A 384
기독교에 따른 존재(Tilværelsen) 법칙
그 법(그리고 다시 말해 이는 은혜다), 즉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심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해 설정하신 법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단독자로서 관계를 맺으라.
네가 지혜롭든 단순하든, 뛰어난 재능을 가졌든 평범하든 전혀 상관없다.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라. (오, 신적 은혜여! 하나님께서 한 개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시다니! 그것도 각각의 단독자로서!)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용기를 가져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의 능력과 가능성에 맞게 모든 것을 조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먼저 관계를 맺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존재하는 것(være til) 자체, 존재(Tilværelsen) 그 자체가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두려워한다-그는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내면의 본능(짐승과 같은 속성)이 승리하여 결국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 한다”를 실존의 첫 번째 원리로 삼는 모든 실존 방식은 결국 낭비된 실존, 궁극적으로는 망쳐진 실존(forspildt Existens)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으로 볼 때, 그것은 단순한 실수(mistake)가 아니라 죄(Brøde)에 의해 이루어진 타락이다.
이런 수백만의 존재 법칙(Tilværelses Lov)은 이렇다. 이런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백만의 인간 존재, 이 흉내내는(Efterabelse) 집단-이들은 감각적으로 보면 마치 거대한 것처럼 보이고,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감각적으로는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보자면, 이 집단, 이 수백만은 “0”보다도 더 없는 무(nothing), 낭비되고 망쳐진 실존들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 파리 한 마리, 심지어 독을 가진 벌레까지도 돌보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낭비되지도, 망쳐지지도 않은 존재(Tilværelse)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흉내내는 집단,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를 선택한 인간은 결국 망쳐진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토록 자비를 베푸셔서, 각각의 단독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셨다. 그리고 그 은혜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과 단독자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사람들처럼” 되기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위엄에 대한 범죄(Majestæts-Forbrydelse)”[i]에 해당한다. 그에 대한 형벌은? 그 형벌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무시되는 것(ignoreres af Gud)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모든 지식의 전달(또는 강의, doceren)는 낭비된, 망쳐진 존재(Tilværelse)이다. 학자들은 점점 더 교묘하게 논리를 다듬고 지식을 쌓아갈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망쳐진 존재(Tilværelse)로 남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 한다”-이것이 모든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지혜의 법칙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혜야말로, 기독교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현명하여 스스로 영원을 속이는 지혜”일 뿐이다.
* *
아아, 나는 슬픔 속에서 이것을 기록한다. 나 자신도 불행하면서도 인간들과 인간들의 무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보인 짐승 같은 행태가 너무나도 가혹하여, 이를 견디기 위해 나는 점점 더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i] Majestæts-Forbrydelse란 원래 왕에 대한 범죄를 의미한다. 덴마크 법률인 Christian V의 덴마크 법(Danske Lov, 1683)에 따르면, 이 범죄는 가장 높은 형벌을 받는 범죄로 규정되었으며, 이는 1849년 6월 5일의 헌법(Grundloven)이 제정된 이후에도 유효했다(6권 4장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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