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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NB:69, Pap.VII1 A181, 1846년, 전능자, 독립, 자유

엉클창 2025. 1. 24. 10:12

 

NB:69, Pap.VII1 A181, 1846

하나님의 전능과 선함과 악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문제[i](하나님은 선을 이루시고 다만 악을 허용하신다는 이 구별[ii] 대신)*는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결국존재를 위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그 누가 행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바로 이 일을 행하기 위해전능자가 필요하다이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이른바존재를 의존하게 만든 것이 전능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전능자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면바로 이런 이유로 전능에 빚진 존재가 독립적일 수 있도록, 전능이 나타난 것처럼 다시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없다왜냐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속에 갇혀 스스로 포로가 되고 따라서 그가 자유롭게 만들고자 한 자와 잘못된 관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게다가모든 유한한 권력(재능 등)에는 유한한 자기 사랑(self-love)이 포함되어 있다. 오직 전능자만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동시에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이 관계가 받는 자의 독립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능이 그분의 선함이다선함이란 완전히 거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능하게 자신을 다시 취함으로써 받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모든 유한한 권력은 존재를 의존적으로 만든다오직 전능자만 존재의 독립을 창조할 수 있다. 무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끊임없이 전능하게 물러남으로써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전능자는 타자와의 관계에 내재해 있지 않다왜냐하면 전능자는 비교될 만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아니전능자는 그 능력의 눈곱만큼도 포기하지 않고 줄 수 있다다시 말해존재를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다전능자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을 창조할 수 있을 뿐 아니라(전체 눈에 보이는 세계),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저 전능자에서 독립할 수 있는 동등한 존재자신의 강력한 손으로 이 세상을 그토록 강력하게 잡을 수 있는 전능자는 자신이 존재하게 했던 것이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손을 가볍게 할 수도 있다단지 능력의 변증법에 대한 비참하고 세속적인 개념만 강제하고 의존성을 만드는 권력과 비례하여 그 능력은 점점 더 커진다고 주장한다아니다소크라테스가 이에 대해 더 잘 이해했다.** 그는 권력의 기술은 정확히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이것이 최고의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해도한 인간과 다른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이것은 수행될 수 없다오직 전능자만 이것을 이룰 수 있다그러므로 한 인간이 하나님께 맞서 눈곱만한 독립적 존재를 지녔다면(실체[materia, substance]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iii]는 다시 한 번 존재를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는 전능자의 표현이다내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빚지고 있는 그분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해도사실 나를 독립적으로 만들었다인간을 창조하실 때하나님이 약간의 능력을 상실했다면명확히 그분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을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JP II 1251 (Pap. VII1 A 181) n.d., 1846

 

* 하나님은 선을 이루시고 다만 악을 허용하신다는 이 구별 대신이 부분은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는 신정론을 발전시킨 바 있다.

** 이 표현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maieutics)과 관련되며, 특히 소피스트들이 수사학을 권력과 설득의 도구로 이해했던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을 가리킨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447a-527e)에서 아이러니하게 논박한다(『플라톤 전집』 2, 117-217쪽 참고).

산파술(maieutics)은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교육적 방법을 뜻하며, 여기서 권력의 진정한 의미는 강요나 억압이 아니라 자유롭게 만드는 것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i] 이는 신정론 문제(theodicéproblemet)를 암시한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고, 왜 하나님이 선과 사랑에 반하는 악에 개입하지 않으시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1. 신정론 문제와 라이프니츠(G.W. Leibniz)의 기여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변 중 하나는 독일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W. Leibniz)의 저작에서 찾을 수 있다.

Theodicee, das ist, Versuch von der Güte Gottes, Freyheit des Menschen, und vom Ursprunge des Bösen(신정론: 하나님의 선하심,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대한 논고)라는 제목의 책에서, 라이프니츠는 이 질문을 다루며 전통적인 신학적 관점을 옹호하려고 시도한다. 이 책은 J.C. 고트셰덴(Gottscheden)이 편집한 1763 5(초판은 1720)으로 출판되었다. 라이프니츠의 논의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바일(Pierre Bayle)의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2. 피에르 바일(Pierre Bayle)의 비판

피에르 바일은 전통적인 신정론적 관점을 비판하며, 악의 존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에 대해 이성적으로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의 관점을 비판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창조의 결함이나 결핍으로 설명했다. 대신, 바일은 악과 선의 공존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대립적 우주적 힘(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한)을 도입하려 했다. 이 관점은 고대 마니교(Manichæism)의 사상과 유사하다. 바일의 주장은 “Manichäer(마니교도들)에 관한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은 그의 저서 “Historisches und Critisches Wörterbuch(역사적 비판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독일어 번역본은 1740년판을 기준으로 J.C. 고트셰덴이 1741-44년 사이에 편집 및 출판했다.

 

3. 논의의 철학적 배경

라이프니츠의 신정론: 그는 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 세상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악은 창조의 일부로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 선하심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악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바일의 비판: 바일은 이러한 설명이 이성과 모순되며,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면 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악과 선을 각각 독립된 우주적 힘으로 간주하는 마니교적 접근법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4. 키르케고르의 맥락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신정론 문제를 그의 철학적, 신학적 논의에서 다루며, 악의 존재와 인간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실존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단순히 철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신앙적 태도를 강조한다.

 

결론

이 질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악의 존재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신정론 문제를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와 바일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키르케고르는 이를 신앙적, 실존적 관점에서 더 깊이 성찰한다. 결국 이 논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자유, 그리고 악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고민을 담고 있다.

[ii] 이 문장은 라이프니츠(Leibniz)의 신정론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구별이다. 이 구별은 하나님이 선(gode)을 창조하시지만, (onde)은 단지 허락하신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1. 라이프니츠의 설명

라이프니츠의 신정론(Theodiceen): 그는 하나님이 여러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세계를 선택하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악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Theodiceen(신정론)의 주요 내용(1, §7-10): 라이프니츠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이 최선의 세계를 선택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7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최고로 지혜로운 존재는, 무한한 선하심과 결합되어 있는 존재로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작은 악은 어떤 종류의 선이 될 수 있으며, 더 큰 선을 방해하는 작은 선은 악으로 간주될 수 있다. (Theodiceen, 1, §10)

다시 말해, 작은 악(또는 결핍)은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수 있다.

 

2. 라이프니츠의 논리적 근거

작은 악과 큰 선: 라이프니츠는 악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본다.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를 위해 허락된 결핍 또는 제한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완전성: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시고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세상을 가능한 최선의 상태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만약 세상을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 것이라고 논증한다.

 

3. 키르케고르의 맥락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구별을 염두에 두면서도, 악의 존재를 실존적이고 신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는 악의 존재가 인간의 실존적 선택과 자유 속에서 드러나는 도전으로 작용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실존적 선택의 문제: 키르케고르에게 악은 단순히 논리적 문제로 간주되지 않고, 인간이 신앙과 자유의 맥락에서 해결해야 할 실존적 과제로 다루어진다. 이는 라이프니츠의 논리적 설명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iii] ()로부터의 창조(Skabelsen af Intet): 기원후 2세기 이래로,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점점 더 널리 퍼진 기독교적 해석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2 마카비 7 28절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내 아이여! 네가 하늘과 땅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무()로부터 지으셨으며, 인간의 자손이 그렇게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creatio ex nihilo(무에서의 창조)라는 기독교 신학적 관점으로, 하나님이 어떤 선재하는 재료 없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