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사상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키르케고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비판적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현대가 비극적 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을 철저히 개인화(individualisering)하면서, 결국 “스스로 돕지 않으면 하늘도 돕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관련하여, 이것이냐 저것이냐, 1부, 영역본 140쪽을 참고하라. 

 

1. 키르케고르의 비판: 연민(同情)의 상실과 “스스로 돕는 자”의 논리

키르케고르는 현대 사회가 가족, 국가, 혈통 등 실체적(substantielle) 요소를 상실하면서, 각 개인을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내맡기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개인은 자기 자신의 창조자(sin egen Skaber) 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진다.

과거의 비극적 구조
고대 비극에서는 개인의 운명이 신적 힘(운명, 섭리)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인간은 이 숙명을 받아들이며 깊은 슬픔 속에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타인은 그를 연민(medlidenhed)하며, 비극적 공감(tragisk sympati)이 가능했다.

현대 사회의 구조:
현대는 모든 개인을 자기 자신의 운명의 책임자로 만든다.
즉, “네가 돕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관객(사회)은 더 이상 비극적 인물을 연민하지 않으며, 대신 “스스로 돕지 않으면 하늘도 돕지 않는다”는 논리로 그를 평가한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비극적인 감각을 소멸시키고, 궁극적으로 인간을 더 깊은 절망(desperation)으로 몰아넣는다고 본다.

👉 결국 키르케고르는 이 문장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비극적 감각을 상실한 결과 이 논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을 비판하고 있다.

 

2.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스스로 돕는 자” 논리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본다. 이 표현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human-centered)이며, 하나님의 은혜(grace)와 섭리(providence)를 고려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조건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무능력할 때 주어진다.
즉,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은 “스스로 돕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 그러므로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기독교적 신앙과 어긋난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3. 결론: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1. 이 문장은 키르케고르가 현대 사회의 비극적 감각 상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2. 그는 현대 사회가 인간을 자기 자신의 창조자로 만들면서, “네가 스스로 돕지 않으면 하늘도 너를 돕지 않는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3. 기독교적 관점에서,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논리가 하나님의 은혜 개념과 충돌한다고 본다.
4. 따라서 그는 이 문장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연민을 상실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논리만이 남아버렸다”는 비판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비극적 감각과 신앙적 은혜를 상실한 현대의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