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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31:161, Pap XI 1 A 497, 나 자신에 대하여, 존재의 비밀 본문
NB31:161, Pap XI 1 A 497
나 자신에 대하여
만약 내가 소란을 일으키고, 당을 조직하고, 숫자를 모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었다면―그렇다면 나는 권력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 잘 자라![i] 하지만 이해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나의 실존(Existeren)는 인류에 대한 가장 깊은 풍자 중 하나이다. 현상적으로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도로 연약한 한 인간이지만, 존재의 비밀(Tilværelsens Hemmeligheder)에 대한 이해는 매우 깊어 드물게 발견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제대로 이해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거나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풍자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작은 점이 이 모든 일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작은 점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존재(Tilværelse)를 상상으로 재구성하고 꾸며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똑같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집중(Intensitet)은 항상 확장(Ekstensitet)과 아이러니한 관계를 가진다. 마치 이런 말과도 같다.
der Eine hat den Beutel und der Andre hat das Geld.
“한 사람은 지갑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돈을 가지고 있다.”[ii]
확장성은 거대한 기계장치와 같고, 집중성은 그 속에서 작아질수록 더 아이러니해진다. 확장성은 자기만족에 빠져서 스스로를 넓히고자 하며, 그러한 정도로 넓어져서 집중성이 조그만 점으로라도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이 관계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마치 거대한 대중 집회가 너무 커서 연설자가 문으로 들어올 수조차 없고, 연설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현실 속 확장성은 늘 거대한 기계장치이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을 느끼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작은 점 하나가 보인다. 그렇다,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작은 점이 보인다. 만약 무대의 커튼이 내려갔는데 배우들이 계속 연기를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가? 마찬가지로 현실이라는 연극도 그런 작은 점 하나가 떠오르면 우스워진다. 무대의 커튼이 내려간다는 것은 연극이 끝났다는 의미이고, 작은 점이 떠오른다는 것은 이제 그 현실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그 점이 작으면 작을수록, 마치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면, 그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는 확장성과 집중성 사이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수많은 군대를 이끌고 현실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다. 그것은 물리적 힘 대 물리적 힘, 즉 균형 잡힌 싸움이다. 그러나 작은 점이라니!
큰 몽둥이로 말의 이마를 내려쳐 죽이는 것도 아이러니하지 않다. 말의 큰 몸집에는 그 정도의 물리적 힘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늘로 특정 지점을 찔러서 말을 죽인다면, 그것은 아이러니하다.
현실을 끝내는 방식이, 그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모두가 인식하게 한다면 아이러니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끝내버린다면―그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하다. 이미 어떤 일이 벌어졌지만, 현실은 전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모든 기계장치는 여전히 작동하고, 모든 배우들은 평소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무언가가 이미 일어났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작은 점이 보인다. 현실은 그것을 보지 못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다.
[i] “God Nat Ole!”는 덴마크어 관용구로, 어떤 상황이나 기회가 끝났거나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체념이나 거절의 표현이다. 직역하면 “잘 자, 올레!”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이제 끝이야”, “가망이 없어”, 또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이 표현은 마치 누군가가 문제 해결을 포기하거나 더 이상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계획이나 목표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God Nat Ole!”라고 말하며 더 이상의 시도를 단념하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ii] 이는 독일 속담으로, “한 사람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 안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어떤 사람은 자산이나 자원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활용하거나 누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의미다.
비슷한 독일 속담으로는,
“Der eine hat das Geld, der andere den Beutel”(한 사람은 돈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Es geht ungleich auf der Welt, der eine hat den Beutel, der andere das Geld”(세상은 불공평하다. 한 사람은 돈주머니를, 다른 사람은 돈을 가진다)
가 있다.
키르케고르는 이 속담을 “Extensitet(확장성)”과 “Intensitet(집중성)”의 대비에서 사용했다. 이는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힘(Extensitet)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본질적이고 깊은 진리나 정신적 힘(Intensitet)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쓰였다. 결국, 외적인 힘과 내적인 진리 사이의 불균형과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맥락에서 이 속담이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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