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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23:134, Pap. X4 A138, “나는 다르게 할 수 없다(Jeg kan det ikke anderledes)” 본문
NB23:134, Pap. X4 A138, “나는 다르게 할 수 없다(Jeg kan det ikke anderledes)”
엉클창 2025. 2. 6. 04:11
“나는 다르게 할 수 없다(Jeg kan det ikke anderledes)” – 터툴리안과 소크라테스의 확신
이 문장은 **터툴리안(Tertullian)**이 말한 것으로, 그의 원래 표현은 다음과 같다.
“진리를 깨달은 자는 그것을 다르게 행할 수 없다. 그는 진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 참조 자료: 프리드리히 뵈링거(F. Böhringer)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증인들(Die Kirche Christi und ihre Zeugen)』 제1권, 1부, 285-286쪽
📌 소크라테스(Socrates)와의 연결
여기에서 다시금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해하는 것(forstå)“이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그것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다.
📌 이것은 기독교적 확신과도 연결된다.
사람이 어떤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 실천 없는 신앙에 대한 비판
이 원리는 일반적인 삶에서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약이 유일한 효과적인 치료제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논리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금융 투자자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어떤 금융인이 “3% 채권이 가장 안전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확인해보니, 그 금융인은 실제로 4% 채권을 사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 즉, 키르케고르는 신앙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 결론
✔ 진리를 아는 자는 반드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 행동이 따르지 않는 신앙 고백은 무의미하다.
✔ 일반적인 삶에서도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며, 신앙은 삶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단순한 신앙 고백이나 교리적 확신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다음을 참고하라. https://praus.tistory.com/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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