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7:18, Pap. III A 104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빛을 선한 자와 악한 자 위에 비추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자신의 태양을 비추게 하시는 것은 단지 가시적인 세계에서만이 아니다 - 그분은 실제로 매 주일, 자신의 교회 안에서 그분의 축복을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 위에 비추신다.
✦ 마태복음 5:45의 신학적 적용: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적으로나 교회 안에서도 '차별 없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비가 인간의 자격과 무관하게 주어짐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배 공동체조차 그 안에 의인과 불의가 섞여 있음을 함축한다.
해설
덴마크 교회 예식서(Kirke-Ritualet), 31쪽에 따르면, 목사는 설교의 맨 마지막을 작은 축원으로 마무리하고, 회중 위에 다음과 같이 축복을 선포한다:
“주께서 너를 복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주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주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축도는 민수기 6장 24-26절(아론의 축복)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교회 안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위에 동일하게 선포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 외형적 구별 없이 주어지는 ‘공공성’에 대한 신학적 반어일 수 있으며, 동시에 교회가 더 이상 실존적 분별의 장소가 아님을 암시하는 비판적 언급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축복하신다’는 교리적 사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키르케고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통해 드러나는 **신학적 반어(ironisk theologi)**의 차원에서 읽어야 합니다.
🕊️ 1. 구절의 표면 의미: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 위에 똑같이 빛을 비추신다”
키르케고르의 일기 III A 104에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축복을 선한 자와 악한 자 위에 비추신다 —이는 가시적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매주일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하신다.”
이 구절은 명백히 마태복음 5:45를 반영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보편적인 자비와 은총을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이 말을 어떤 문맥 속에서 쓰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이 말은 곧 공공성에 대한 아이러니한 비판으로 작동합니다.
🕳️ 2.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전제:
“진리는 단독자에게만 주어진다”
•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진리, 신앙, 은총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에게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 반면, ‘공공성(publicum)’ 또는 ‘군중et Mængden’은 신앙을 외면화하고, 진리를 감상하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허위 구조입니다. 따라서 “공공적으로 선포되는 은총”은 실존적 결단 없이 공유되는 형식적 진리, 즉 내용을 상실한 은혜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 3. 반어는 여기서 생긴다
“하나님은 매주일 교회 안에서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 위에 축복을 비추신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 층위의 반어를 가집니다:
층위 | 층위의미 |
표면 | 하나님의 보편적 자비와 은총 |
실존적 반어 | 모두가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이, 실제로는 아무도 진정으로 그 축복을 받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
교회 비판 | 교회는 축복을 남발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무차별한 관행의 언어로 전락시킨다 |
윤리적 반어 | 축복이 실존적 회개나 결단 없이 주어질 때, 진리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감미롭기만 하다. 그것은 진짜 진리가 아니다. |
따라서 이 구절은 “축복의 보편성”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너무 보편화되어 진정성이 상실된 상황에 대한 조롱이자, 교회를 향한 묵직한 반어적 신학적 비판입니다.
🧨 4. 키르케고르의 근본 의도
• 그는 교회를 “은혜의 시장”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깊이 경계합니다.
• 모두가 다 축복을 받는다면, 아무도 그 축복을 실존적으로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만이 은총을 실존적으로 받을 수 있으며,
그 외의 모든 공적 구조 속에서의 은총은 아이러니한 외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결론: 왜 ‘공공성에 대한 신학의 반어’인가?
키르케고르에게 은총은 절대로 공공재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선포되는 축복은, 실상 그 누구도 참되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실존적 빈곤을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남긴, “모든 이에게 선포된 은혜는 아무에게도 진정으로 이르지 않는다”는 심각한 반어적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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