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가 헤겔의 역사철학, 특히 위의 인용처럼 “정신(Geist)이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해 나가며, 이 전체가 곧 하나님의 일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제기한 핵심 비판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결론 없는 비학문적 후서≫(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와 ≪철학적 단편≫(Philosophiske Smuler),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을 통해 이 비판을 일관되게 제시합니다.
🧭 1. 역사의 정당화(theodicy)에 대한 실존적 항의
“역사는 하나님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 한 사람의 고통조차 정당화할 수 없다.”
- 헤겔은 “세계사의 전개가 곧 신의 자기실현이며, 이것이 신정론(theodicæa)”이라고 보았다.
-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역사 전체가 신의 의도이므로 결과는 정당하다”는 식의 변증법은, 한 개인의 고통과 비극을 객관적 진리로 덮어버리는 폭력이라고 본다.
- 그는 욥기에서처럼, 고통받는 한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진리를 강조한다.
🔍 2. 주체적 진리 vs. 객관적 시스템
“진리는 객관성이 아니라 주관성이다.”
“진리란, 객관적인 확실성의 결과가 아니라, 주체가 ‘무한한 열정’으로 진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 헤겔은 진리를 객관적 체계(system) 속에 통합하려 했다. 역사, 국가, 종교 모두가 이 이성적 체계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
-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 실존의 진리를 제거한다고 비판한다.
- 그리스도와 동시대인이 되는 것, 그리고 믿음으로 결단하는 것은 객관화될 수 없는 주체적 실존의 문제다.
- 즉, 믿음은 ‘시스템’이 아니라 ‘관계’이며, 무한한 내면적 고통과 투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존의 사건이다.
⏳ 3. 시간과 영원의 단절에 대한 이해 차이
“역사는 발전이 아니라 후퇴다.”
- 헤겔은 역사를 시간 속에서 영원의 점진적 실현 과정이라 본다.
- 키르케고르는 시간과 영원은 변증법적으로 충돌하는 두 차원이라고 보며,
- 영원은 순간(Øieblikket) 속에 침투하며, 이때 인간은 하나님과 실존적 동시성(contemporaneity)을 이룬다.
- 그래서 그는 역사와 구원의 시제를 동행하지 않는다.
- 영원은 체계의 단계적 전개를 통해 실현되지 않으며, 오히려 순간의 결단으로 주어진다.
🧱 4. 보편자(Universal)와 단독자(Enkelte)의 충돌
“보편자는 단독자의 실존을 지배할 수 없다.”
- 헤겔은 국가와 사회의 이성적 보편성이 진리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보편자에 반하는 단독자의 신 앞에서의 절대적 책임을 강조한다.
- 믿음은 **윤리적 보편자(Ethikens Almene)**를 초월한 신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다.
- 윤리적 규범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초월적 실존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는 윤리와 역사철학의 체계를 넘어선다.
🪞핵심 정리표
구분 | 헤겔 | 키르케고르 |
진리 | 보편적, 체계적 진리 | 주체적, 실존적 진리 |
역사 | 이성의 자기실현 | 회귀와 퇴보, 실존의 무대 |
인간 | 이성적 주체, 국가 시민 | 하나님 앞의 단독자 |
구원 | 점진적 발전과 인식 | 순간의 결단과 비약 |
신정론 | 전체 역사로 신을 정당화 | 고통받는 자의 항의로 신을 만남 |
믿음 | 체계적 종교 인식 | 역설의 실존적 결단 |
🔚 결론
키르케고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체계는 없다. 실존은 하나의 체계가 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신, 진리, 구원은 결코 보편적 이성의 이름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오직 고독한 단독자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드는 역설적인 행위를 통해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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