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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NB:78 Pap.VII1 A191

엉클창 2022. 7.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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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78 Pap.VII1 A191

정신의 범주와 관련하여, 자연과학 방법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은 것이 있다면, 나는 먼저 현미경을 잡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 못지않게 이에 대해 인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질적 변증법의 도움으로, 내가 이것을 쉽게 볼 수 있으므로, 즉, 질적인 의미에서, 10만년 후에도 세계가 한 발짝도 더 멀리 나가지 못했음을 쉽게 볼 수 있으므로, 정확히 정반대의 것을 행할 것이다. 나의 영혼을 보존하고 단 1초도 호기심을 위해 나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어느 날 나는 임종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할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해를 못했다. 내가 아무리 놀라움과 경배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해도, 나의 엔더스(Anders)나 여종보다 더 이해를 못했다.”

 

물론 나는 도구를 갖고 그런 종류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예리함을 준 분이 하나님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질적 변증법을 사용할 수 있고, 이런 정량화(quantifying), 근접화(approximating)에서 자기모순을 깨닫게 하는 이성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경건하고 겸손하게 호기심을 포기해야 한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일에 필요한 종류의 냉담함을 버려야 한다. 윤리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관계하면서, 그분을 예배하기 위해서 말이다.

 

If there were anything to be gained by making use of the methods of natural science with respect to the category of spirit, I would be the first to get hold of a microscope, and I hope I would persevere in this as well as anyone. But since by means of qualitative dialectic I can easily see that, in the qualitative sense, in 100,000 years the world will not have come one single step further, I will therefore do the exact opposite, preserve my soul and not waste a single second of my life on curiosity. And then, one day, when I lie on my deathbed, I will indeed console myself by saying: I have, then, certainly not understood the least bit of this sort of thing, not the least bit more than my Anders or a maidservant, though perhaps I have all the more often praised God in wonder and in worship. Of course I can well understand that it is God who has given man the sort of acuity that enables him to make discoveries with instruments and that sort of thing, but since it is also God who has given man the reason with which he can make use of qualitative dialectic and come to realize the self-contradiction in this quantifying, approximating Almost: therefore, man ought devoutly and humbly renounce curiosity, renounce the sort of detachment needed for making microscopic observations, in order instead to worship God, relating to him only through the eth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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