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 대하여(Pap. X2 A 340)
The System begins with ‘nothing’, mysticism always ends with ‘nothing’. The latter is the divine nothing, just as Socrates’ ignorance was fear of God, the ignorance with which, again, he did not begin but ended, or at which he constantly arrived. -Pap. X 2 A 340, n.d., 1850Med »Intet« begynder Systemet, med »Intet« ender Mystikken altid. Det sidste er det gudelige Intet, ligesom Socratess Uv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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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관련 일기(자기 자신을 아는 것, Pap. VII1 A 200)
자연과학과 관계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당신은 무방비 상태로 거기에 서 있고 통제 불능이다. 연구자는 구체적인 것들로 당신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시작한다. 즉, 지금 호주로 가고, 이제 달로, 지하 동굴로, 내장 벌레를 찾으러 똥구멍으로 가기도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한 순간에는 망원경이 필요하기도 하며, 다른 순간에는 현미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악마의 이름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다! 농담은 차치하고 진지하게 말하자면, 혼란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철학이 자연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무엇이 무엇인지, 변증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모두 은유의 기발한 언어인가? (이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는 게 더 낫다.) 이것은 예증인가, 유비인가? 혹은 우리의 이론을 자연과학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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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nothing)에 대하여(Pap. VIII2 B 58:3 n.d., 1847)
사랑을 찬양하는 일이 효과적으로 수행되려면, 오랫 동안 인내하며 한 가지만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몹시 힘들다. 그때, 육체 안에 가시가 있음을 발견한다. 즉,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여백에서: 여기에 자기 부인(Self-denial)이 있다. -Pap. VIII2 b 58:3 n.d., 1847 *육체 안의 가시: 고린도후서 12:7, 이 부분은 또한 다음을 참고하라. "The Thorn in the Flesh," Four Upbuilding Discourses (1844), in Eighteen Discourses, pp. 326-46, KW V (SV V 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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