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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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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의 신학에서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릿도 사이의 연속성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국 기독론은 어느 한 쪽 입장에 따른 반쪽짜리 기독론이 될 수밖에 없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무시한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결국 '예수론(Jesusology)'이 되고, 역사적 예수를 포기한 그리스도는 도그마의 그리스도가 되고 만다. 그동안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보면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비평가들은 불트만의 사상에서 역사비평적 연구의 결과가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불트만이 역사를 실존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혹은 불트만의 사상에서 역사비평적 연구는 신앙을 위해 아무런..
참고로 이 일기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 은혜로 만족하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1) 이것은 거의 선택과 같다. 즉, 당신은 '강하면서도 자유롭게' 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그 정도로 나를 망각할 위험에 노출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내가 고난을 원하고, 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한다 해도, 이것이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아니, 이것은 그렇게 내버려 두라! 가시를 제거함으로써, 나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약화되게 될 것인가? 그때 가시는 남게 하라. 따라서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할 때, 이것은 나의 의견이다. 그때, 은혜와 기쁨이 더욱 강하게 나를 하나님께 결속시켜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아신다. 홀로..
아래 번역은 구글 번역의 도움으로 덴마크어를 옮긴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SKS 24, 386, NB24:105 / JP 2, 1904, p. 349.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본받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 "본받음"(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자기 학대도 아니고, 위선도, 행위로 말미암은 의도 아니다. ret forstaaet, altsaa ikke til Selvplagelse, ei heller til Hyklerie og * Gjernings-Retfærdighed o: s: v :) 기독교는 시도, 신화도, 추상적 의미에서의 이념도 아니라는 보장, 이것이 아마 개신교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이다. "본받음"은 "단독자"를 각각 개인으로 이상과 관계하게 한다. 보라, 바로 이것..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순교자가 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 즉 모든 진정한 기독교인은 순교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초라한 목사들 중 한 명이 (초라하다는 것은 기독교를 배신하기 위해 일년에 이삼십만 달러, 장식품 등으로 위신을 받을 만큼 초라한 목사들 중 한 명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물론, 우리 모두가 순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에 대해 대답하신다. "어리석은 자여, 내가 어떻게 세상을 정리하였는지 알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하라. 1/10, 1/1000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 하라." 요점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내린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 바로 여기에 사기가 있다: 사람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점점 더 부적절하게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바꾸고, 그것에서 제외되었다. 비록 어떤 객관적인 의미에서 기독교가 객관적인 가르침으로 선언되지만, 변경된 기준 때문에 아무도 기독교인이 될 자격이 없다. 따라서 기독교는 시, 신화이다. 이것이 정통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약에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신약은 요구조건을, 모범으로 사람 되신 하나님(God-man)을 포함한다. 이 셀 수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서 모든 사람, 절대적으로 모든 각 사람은 이 요구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허튼 소리나 중간 조건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방식은 윤리학이 천재와 재능과 같은 구별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런 동일한 냉정함으..
이상과 멀리 있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이상(Idealet af en Christen)을 어느 정도는 서술할 수 있다. 시적 실존(poetic existence)과 이상을 위해 본질적으로 분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면서 그 이상을 예술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별개다. 왜냐하면 시적 실존은 분투하면서 자신을 이상과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술만 하기 때문이다. (SKS 22, 122, NB11:196)
Pap.XI1A504Idealiteter] for at forkynde Χstd. En Idealitet er den: Forkyndelsens Ideal er at Alle blive Χstne. En anden Idealitet er den (dette er Reflexionen): Forkyndelsens Ideal er at skaffe een Χsten. “This is one ideal [Idealitet]: The ideal [Ideal] for preaching is that all become Christians. Another ideal [Idealitet] is this (this is the reflection): The ideal [Ideal] for preaching is 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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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이상(Idealet)은 이렇게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념을 위해 사는 데 더 가까워질수록, 이 생각을 위해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데 더 가까워질수록, 자기 자신을 이상과 관계하는 데 더 가까워진다. 물론, 이 이상이 그리스도일 때, 그분과 그분을 가까이 하는 자 사이에 무한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써야 하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잔인하다. 그러나 여기서 온유와 위로가 인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더 높은 이상을 위해 살 수 없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본질적인 걱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나 또한 이것을 항상 느끼고 인정해 왔다. 즉, 나는 항상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