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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Pap. XI1 A 130, SKS 25, 342) 본문

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Pap. XI1 A 130, SKS 25, 342)

엉클창 2022. 4. 29. 23:40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

바로 여기에 사기가 있다: 사람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점점 더 부적절하게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바꾸고, 그것에서 제외되었다.

비록 어떤 객관적인 의미에서 기독교가 객관적인 가르침으로 선언되지만, 변경된 기준 때문에 아무도 기독교인이 될 자격이 없다. 따라서 기독교는 시, 신화이다. 이것이 정통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약에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신약은 요구조건을, 모범으로 사람 되신 하나님(God-man)을 포함한다. 이 셀 수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서 모든 사람, 절대적으로 모든 각 사람은 이 요구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허튼 소리나 중간 조건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사는 방식은 윤리학이 천재와 재능과 같은 구별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런 동일한 냉정함으로 볼 때,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그에게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말아야 한다.) 동일한 냉정함으로 볼 때, 나는 자기를 부인할 수도 없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천재가 아니면서도, 천재가 되기를 열망하지 않을 때, 자신의 겸손함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또한 윤리적 비참함에 만족할 만큼 충분히 겸손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훌륭하다! 학교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서 학생들은 마치 근면함이 좋은 마음을 갖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처럼 말한다. 동일한 냉정함으로 말이다! 게다가, 거기에서 학생들은 근면함이 부족한 것에 대해 겸손이라 칭찬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게으른 것에 대해 만족할 만큼 겸손해."

신약성서에서 사람이 되는 기준은 영원한 것이다. 민족, 세기, 국가, 동시대인들 사이에 구별되는 것, 그런 동시대성, 비참한 동시대성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그 끔찍한 위조품들을 생각해 보라. 한 마디로, 내가 괴테적인 것, 헤겔적이라고 부르는 것, 시대를 만족시키는 그런 종류의 위조품을 생각해 보라.

게다가, 사람이 되기 위한 신약성서의 기준은 단독자가 되는 것이고,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협력(association)이다. 54 XI 1 A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