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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7:49, IX A 306, n.d., 1848, 이웃사랑 본문
NB7:49, IX A 306, n.d., 1848, JP III 2419
‘믿음’이 변증법적 범주인 것처럼,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치며,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이교도들도 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징이 변증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성에서는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할 때,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런 식으로만 하나님은 사랑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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