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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FF:93, (Pap. II A 662) 야누스의 의미

엉클창 2024. 11. 30. 15:16

FF:93, (Pap. II A 662)

나는 양면의 야누스(Janus bifrons)[ii]처럼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키르케고르가 자신을 양면의 야누스로 묘사하며, 한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우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그의 내적 갈등인간 실존의 이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그의 철학적·신학적 사유, 특히 실존적 긴장과 모순에 대한 탐구와 연결됩니다.

 

1. 실존의 이중성

야누스는 앞뒤를 모두 볼 수 있는 로마의 신으로, 과거와 미래, 시작과 끝, 기쁨과 슬픔 등 상반되는 두 측면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이는 인간 실존의 본질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웃음은 삶의 아름다움, 희망, 또는 초월적 신앙의 기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울음은 삶의 고통, 실존적 불안, 죄책감,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반영합니다.

그는 인간 존재가 이 두 감정을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2. 내적 갈등과 자기분열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개인적 고뇌철학적 통찰을 결합시켰습니다. 그의 삶에서 특히 레기네 올센과의 관계신앙적 결단의 문제는 그를 깊은 내적 갈등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앙의 요구를 받아들여 레기네와의 관계를 끊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를 사랑했던 자신의 인간적 감정과 결정을 동시에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자기분열은 키르케고르 철학의 중심 주제인 “이것이냐 저것이냐”, 즉 선택과 체념의 딜레마와 연결됩니다.

 

3. 실존적 긴장의 표현

키르케고르는 실존이란 항상 상반되는 힘들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웃음과 울음은 서로 대립하지만, 동시에 인간 실존의 복합성을 형성합니다.

그는 이러한 긴장이 신앙윤리적 책임, 개인의 자유절대자의 요구 사이에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4. 유머와 비극의 공존

키르케고르에게 유머는 인간의 실존적 모순을 깨닫는 깊은 통찰에서 나옵니다.

웃음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삶의 모순을 초월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울음은 이 초월적 진리를 깨닫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요약

키르케고르가 자신을 야누스에 비유하며 웃음울음을 동시에 묘사한 이유는, 그의 삶과 철학이 보여주는 실존적 긴장과 모순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인간 실존의 양면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신앙적 결단과 초월적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