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살리는 영이지만, 먼저 죽음을 요구한다”는 사상은 신약성경의 다음 세 구절들과 신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 로마서 6장 3–8절: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남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3,5)
연결 해설:
바울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죽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을 실존적으로 전유합니다. 그는 ‘성령에 의한 새 생명’을 단순한 ‘감정의 고양’이나 ‘삶의 질 향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죽는 고통을 전제로 한 진정한 변혁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때 죽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는 실존적 사건’입니다.
2. 요한복음 3장 3–8절: 거듭남과 성령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3,5–6)
연결 해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에 의한 거듭남은, 키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을 통한 새 생명”과 동일한 구조를 가집니다. 그는 성령을 단지 감화나 은혜가 아닌, 죽이고 다시 살리는 능동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이 점에서 요한복음의 “영으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은존재의 단절과 초월을 동반한 Tilværelse의 생성으로 독해됩니다.
3.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연결 해설:
바울의 이 고백은 키르케고르의 “먼저 죽고, 그 후에 성령에 의해 새 생명을 얻는다”는 사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키르케고르는 ‘죽음 없이 생명만을 추구하는 것’을 “신성 모독”, “기독교의 남용”이라고 봅니다.즉, 거듭남이나 구원은 기존 자아의 강화가 아니라 소멸을 통과한 존재의 재탄생이어야 합니다.
결론: 키르케고르의 종말론적 존재론은 신약성경과의 내적 친연성 속에 있다
-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종말은 단지 시간의 끝이 아니라,자아가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Tilværelse의 실존적 단절입니다.
- 그리하여 성령은 “Trøsteren(위로자)”이지만, 그 위로는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위로입니다.
- 성령의 오심은 곧 자기부정과 존재 해체,이 사건을 통해서만 기독교적 생명이 시작됩니다.
-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의 재창조 사건입니다.
'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어 남자와 아그네스 이야기 (0) | 2025.06.26 |
---|---|
고백, 마음의 청결 41쪽 해설 (0) | 2025.05.28 |
동화: 《거꾸로 연주해야 돌아오는 길》 (0) | 2025.05.15 |
회개와 옷에 대하여, [마음의 청결] (0) | 2025.05.14 |
동화책 구상 (0) | 2025.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