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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가상현실 시대의 실존 형성: 키르케고르적 비판을 중심으로

by 엉클창 2025. 7. 4.

기독교의 훈련, 영역본 188쪽 해설

가상현실 시대의 실존 형성: 키르케고르적 비판을 중심으로

현대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의 시대다. 인간은 더 이상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아도 되고, 시간의 무게 없이도 체험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죽음조차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실존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오해이며, 위험한 자기기만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 존재를 끊임없는 시험과 형성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삶은 시험(Examen)이다"라고 단언하며, 참된 존재는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고난과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의 사유에 따르면, 인간은 삶을 '미리 살아볼 수' 없으며, 인생은 그 자체로 겪어야 할 시간의 길이와 고통의 깊이를 포함한다. 상상력(Indbildningskraft)이 아무리 정교하고 감동적이라 해도, 그것은 고난을 단축하고 이상화하는 성향을 띠기에 진정한 실존을 재현할 수 없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하게 말한다: "만약 인간이 상상력만으로 삶의 고난과 형성을 미리 겪어낼 수 있다면, 인생 자체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VR 기술은 오늘날 이 상상력의 환상을 현실화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가상세계에서 인간은 위험 없이 사랑하고, 실패 없이 싸우며, 죽음조차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적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체험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재 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고난, 시간, 그리고 무게를 지닌 현실만이 존재를 '생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의 부스러기』와 여러 건덕적 담론 속에서 존재(Tilværelsen)는 단지 '있는 것'(Væren)이 아니라, 고통과 시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라 보았다.

가상현실은 본질적으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강조하는 참된 존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전자는 표상의 세계이고, 후자는 형성의 세계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분이다. 가상체험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은 실존적 책임, 윤리적 결단, 신 앞에서의 고독한 고뇌를 대신해 줄 수 없다.

결론적으로, VR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대는 진짜 고난 없이 형성된 완전함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대가 사랑하는 것은 상상 속의 신인가, 아니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고난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인가?"

실존은 생성이며, 이 생성은 가상공간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이 흘러야만 하는 실제 세계에서만 일어난다. 오늘날, 이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현실을 체험하기보다 회피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