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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NB 28:6, Pap.X5A95 키르케고르 저널 NB 28로 돌아가기 Journal NB 28(1853년)은 여기에서 시작하십시오 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덴마크어 원전과 영어를 참고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저널 표기법은 NB와 Pap를 병행하여 표기했습니다. JOURNAL NB28 Journal NB28 in Søren Kierkegaards Skrifter Pap... praus.tistory.com NB 28:6, Pap.X5A95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 유대인은 하나님을 보는 것은 죽음이라고 믿었다. 이방인들은 신을 보는 것은 미쳐서 벌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즉, 하나님을 보는 것이 벌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가장 숭고한 은혜이고, 복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 더보기
NB 28:5(1853), Pap.X5A94 키르케고르 저널 NB 28로 돌아가기 Journal NB 28(1853년)은 여기에서 시작하십시오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덴마크어 원전과 영어를 참고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저널 표기법은 NB와 Pap를 병행하여 표기했습니다. JOURNAL NB28 Journal NB28 in Søren Kierkegaards Skrifter Pap...praus.tistory.comNB 28:5(1853), Pap.X5A94금욕주의에 대하여금욕주의는 너무 쉽게 궤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듯, 그가 더럽혀진 것이 아닐지라도, 약간은 즐거움에 빠져 살았던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때 그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해보라. 그가 과연 중단할 수 있는가? 아니다. 곧, 동일하게 불타오르는 불안이 가장 시시한 것들을 향.. 더보기
Journal NB 28(1853년)은 여기에서 시작하십시오 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덴마크어 원전과 영어를 참고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저널 표기법은 NB와 Pap를 병행하여 표기했습니다. Journals and Notebooks는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JOURNAL NB28 Journal NB28 in Søren Kierkegaards Skrifter Pap. X5 A, Pap XI1 A 아래를 클릭하시면 해당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1 X5 A90 2 X5 A92 3 X5 A93 4 X5 A91 5 X5 A94 6 X5 A95 7 X5 A96 8 X5 A97 9 X5 A98 10 X5 A99 11 X5 A100 12 X5 A101 13 X5 A102 14 X5 A103 15 X5 A104 16 X5 A105 17 X5 A106 18 X5 A107 1.. 더보기
본받음에 대하여(NB 20:23, Pap. X3 A 276) NB 20:23 유대교와 기독교의 혼합 기독교 세계에서 보는 종교성의 부스러기(그리고 이것은 많지 않다.)는, 내가 다른 곳에서 언급했듯이, 기독교적인 것과 유대교적인 것의 혼란스러운 혼합물이다. 여기에 우리가 사는 방식이 있다: 어떤 신이, 하늘에 어떤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만 수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방식을 아실 뿐이다. 나느 그렇게 추측한다.) 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세상에서 일이 잘되든 못되든 그분께 있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경건한 자의 자리에 대해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다. 때로는 경건한 자가 평온하게 살고, 행운이 그에게 미소지을 수도 있는 반면, 다른 경건한 자는 불행에 직면한다. 하지만 둘은 경건하다. 그들이 경건한지 경건하지 않는지는 그들의 운명으.. 더보기
기독교의 아이러니, 사람이 된다는 것, 이상성(NB 35:2, Pap. XI2 A 189) 키르케고르 저널 NB 35로 돌아가기 Journal NB 35(1854년)은 여기에서 시작하십시오 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덴마크어 원전과 영어를 참고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저널 표기법은 NB와 Pap를 병행하여 표기했습니다. Journals and Notebooks는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JOURNAL NB 35 Jour praus.tistory.com 덴마크어 번역으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NB 35:2, Pap XI2 A 189 아이러니 나의 존재 전체는 가장 깊은 아이러니다. 남 아메리가로 여행하는 것, 땅속 동굴로 내려가는 것, 거기에서 잃어버린 동물, 멸종된 동물의 화석 유물을 파내는 것: 이런 것에는 아이러니한 것이 없다. 거기에서 지금 발견된 동물에 대해 같은 동물인척 할 수 없다... 더보기
은혜와 노력(Pap. X3 A 734) 기독교적 강조점 기독교적으로 강조점은 이 요구를 얼마나 성취하는 데 성공했는지 멀어졌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요구가 무한히 그에게 나타난 것처럼 단지 노력한다면, 그는 겸손해지고, 은혜에 의지하는 법을 올바르게 배운다. 이 요구를 더 잘 성취하기 위해, 요구를 꺼버리는 것(이것이 진지한 것처럼, 하지만 이 요구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것에 더 쉽게 진지해질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내적 존재(속사람, inermost being)이다. 아니, 무한한 겸손과 은혜, 그때 은혜가 낳은 노력, 바로 이것이 기독교이다. JP, 1:993/SKS, 24, NB 22:112 Det christelige Eftertryk. Christeligt ligger Eftertrykket ikke nær saa .. 더보기
하나님 앞에서 무(Pap. X2 A 76) 덴마크어 번역 오, 진심으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참새보다 못한, 모래 한 알보다 못한 존재임을 느낄 때, 형언할 수 없는 행복(indiscribable bliss)이 있다. 이것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며 말했다. "이제 나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를 4000만 마일 깊은 곳에 던져 버리라." 오, 그가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음을 느꼈던 것이 그의 안에 진리였다면, 같은 순간에 자기 자신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오, 하나님 한 가지를 더 보여주십시오. 매년마다, 매일, 매 시간, 매순간에, 당신의 신뢰 안에서 안식하며 감사를, 형언할 수 없는 감사를 갖게 하소서. 하지만 나는 의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던.. 더보기
농담에 대하여(Pap. VII1 A 207) 믿음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승리이다.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요일 5:4) “맞다, 우리는 승리보다 크다.” 용사가 겪는 싸움이 현실의 모든 타당성을 가질 때, 그는 그 안에서 싸운다. 그때 그의 승리가 아무리 찬란하더라도 승리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싸움이 그에게 현실의 모든 타당성을 갖지 못할 때, 이 전투에서 싸우는 것은 그에게 최고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승리한 것 그 이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에게 부수적인 것이고, 더 고차원적인 싸움과 관련하여 농담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믿음의 진지함이다. 즉,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 진정한 싸움이다. 그러나 세상과의 싸움, 세상의 기쁨과 슬픔은 농담과 같다. 따라서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요, 승리보다 크다. 즉, 믿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