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26:40, Pap. X4 A 588 n.d., 1852, 1661
성령은 “위로자”이십니다 – 죽는다는 것 – 다시 태어난다는 것. 왜 성령을 “위로자(Trøsteren)”라고 부를까요?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만약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표지가“모든 일이 내게 잘 풀리는 것”이라면,저는 아무런 성령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한 관계는 전혀 영적인 관계가 아닙니다.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지가 고통이라면,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바로 내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데에 나타난다면,(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이시기에, 그 사랑을 표현하실 수 있는 방식이 다름 아닌고통을 통해서라는 것은 신약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이며,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그에게 ..
2025. 6. 7.
JJ:203-5, 자연화, 마르텐센, 세례의 문제
JJ: 203, Pap. V A 8자연에 대한 성찰이 최초의 (인간적인) 신 인식에 해당한다면, 계시에 대한 성찰은 두 번째의 직접적인 신 인식(죄의식)과 관련된다. 바로 여기서 싸움이 벌어져야 하며, 사람들에게 계시에 대한 확률을 억지로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신 인식을 죄의식 아래로 복속시켜야 한다. JJ:204, Pap. V A 9사유의 영역에서 ‘흥정(prutten)’이라는 것이 있다. 일정 정도 이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좋은 결심들이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처럼,[i] 잡담(passiar)에 이르게 된다. JJ:205, Pap. V A 10만약 기독교가 세상에서 자연(natur)처럼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
2025.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