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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번역으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NB 35:2, Pap XI2 A 189
아이러니
나의 존재 전체는 가장 깊은 아이러니다.
남 아메리가로 여행하는 것, 땅속 동굴로 내려가는 것, 거기에서 잃어버린 동물, 멸종된 동물의 화석 유물을 파내는 것: 이런 것에는 아이러니한 것이 없다. 거기에서 지금 발견된 동물에 대해 같은 동물인척 할 수 없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물의 뼈처럼, 현존하는 기독교와 관련된 기독교적인 것의 형성을 발굴하기 위해 '기독교'의 한 가운데 있는 것: 즉, 이것은 최고의 강렬한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는 기독교의 심판이 동시에 벨벳과 실크와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목사와 기독교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수백만의 기독교인일 것이라 추정된다는 사실에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말에서의 표현과 구절 속에 있는 것일까? 그런 하찮은 일, 아이러니하게 말할 수 있는 기교, 그런 것들은 소크라테스를 구성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존재 전체가 아이러니이다. 즉, 건장한 남자와 사업가들의 동시대의 모든 인구가, 말하자면 이 수천명이 완전하게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소크라테스를 내려놓고 이 문제를 다루었다. 즉,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그는 이 수천명의 사람들의 열정이 상상, 농담, 소동, 잡음, 분주함과 같은 것임을 표현한다. 이념에서 이런 것들의 가치는 0이거나 0보다 못하다. 이런 사람들이 이상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사용하는 하는 한 그렇다.
기독교와 관련된 아이러니는 소크라테스적인 것보다 그 안에 한 계기가 더 있다. 기독교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물론,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멈춘다.),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상상한다. 소크라테스는 태어날 때 사람이 되는 것인지 의심했다. 사람이 되는 것, 혹은 사람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는 것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사로잡혔던 것, 찾았던 것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이상성(Idealiteten)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기독교인이 되거나, "하나의 고백에 의해" 그리스도인인 된다는 이런 헛튼 소리를 들을 때, 그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진보할 만큼 완전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소크라테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완전함에 대하여
이 부분은 특별하게 마르텐센의 신학과 관련이 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는 완전하다. 부분적으로는 사람의 발전의 최고의 목표이다. 완전함은 기독교가 하나 혹은 다른 형태의 역사적 발전에 종속되었을 때 일어난다. NB28:9 (1853), NB28:77 (1854), NB28:92 (1854), NB30:16 (1854), NB30:65 (1854), i SKS 25,221f., 276f., 283, 394f. og 439; NB31:62 (1854), NB32:48 (1854), NB32:119 (1854), NB34:43 (1854), i SKS 26, 45f., 150f., 208 og 355f. Se også afsnittet om »Det christelige Perfectibilitetsbegreb« i § 21 i H.N. Clausen Christelig Troeslære, Kbh. 1853, ktl. 256, s. 54-58.
"완전함"의 기독교적 개념"에 대해 참고하려면 다음을 보라. § 21 i H.N. Clausen Christelig Troeslære, Kbh. 1853, ktl. 256, s. 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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