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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하나님 앞에서 무(Pap. X2 A 76) 본문
덴마크어 번역
오, 진심으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참새보다 못한, 모래 한 알보다 못한 존재임을 느낄 때, 형언할 수 없는 행복(indiscribable bliss)이 있다. 이것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며 말했다.
"이제 나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를 4000만 마일 깊은 곳에 던져 버리라."
오, 그가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음을 느꼈던 것이 그의 안에 진리였다면, 같은 순간에 자기 자신이 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오, 하나님 한 가지를 더 보여주십시오. 매년마다, 매일, 매 시간, 매순간에, 당신의 신뢰 안에서 안식하며 감사를, 형언할 수 없는 감사를 갖게 하소서. 하지만 나는 의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감사를, 매년, 매일, 매시간, 매순간, 내가 당신의 신뢰의 행복을, 당산과 함께 함의 행복을 깨달은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했던 자, 그가 아마도 소리쳤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기꾼입니다."
내가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아닌 존재가 사실일 때,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이고, 유익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분과 함께 하는 행복을 맛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원하는 것과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 그러나 충분히 오려 견뎠을지라도, 마치 대단한 존재인 양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에게 중요해지는 인간적인 진지함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동일한 순간에 아이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기도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것은 농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 70년의 세월, 끔찍한 노력과 희생, 오 하나님, 당신이 그것들을 볼때, '작은 꼬마야, 그것은 농담이란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나는 그렇게도 오래 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시도한 것뿐이야."
아이가 생일 선물을 위해 앉아서 1년 내내 일을 했다면, 아이에게는 많은 일이었고, 그 일년 동안 어떤 즐거움도 거부했다면, 이 일에 대해 게으른 적도 없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피곤한 아이인가. 그는 와서 대단히 중요하게 그의 선물을 넘겨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아니, 아이는 사랑그럽게 선물을 가지고 와서, 즉각적으로 그 전체를 농담으로 바꾸기 원하면서 말한다.
"이것은 농담에 불과합니다. 감히 감사를 표현한 것에 대해 나를 용서해 주세요."
-JP 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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