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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내 은혜로 만족하라(JP, 4:644 (Pap. X2 A 246) n.d., 1849) 본문
참고로 이 일기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 은혜로 만족하라.]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1) 이것은 거의 선택과 같다. 즉, 당신은 '강하면서도 자유롭게' 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그 정도로 나를 망각할 위험에 노출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내가 고난을 원하고, 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한다 해도, 이것이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아니, 이것은 그렇게 내버려 두라! 가시를 제거함으로써, 나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 약화되게 될 것인가? 그때 가시는 남게 하라.
따라서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기도할 때, 이것은 나의 의견이다. 그때, 은혜와 기쁨이 더욱 강하게 나를 하나님께 결속시켜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아신다. 홀로 가장 잘 결속하는 것을 아신다.
2) 이 약함이 당신의 강함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하여질 때", 당신은 아마도 당신의 모든 능력보다 더 강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은 더 강하다.
1) Det er jo næsten som et Valg: kunde Du ønske at være *»stærk og fri«, og saa udsat for den Fare, at glemme mig. Og dertil maatte man da *vel svare: nei. Selv om jeg lidende Smerten ønsker og beder, at *Tornen maa tages bort: o,] dersom det skulde betyde at jeg saa skulde glemme Gud – nei, lad den saa blive! Vilde jeg ved at Tornen borttages, komme til mindre levende at fornemme mit *Samfund med Gud: lad den saa blive. Og derfor, idet jeg beder, at den maa borttages, saa er da dette min Mening, at saa Taknemligheden og Glæden maatte binde mig end stærkere til Gud. Men det veed Gud dog egl.] alene, hvad der binder bedst.
2) Betænk, at just denne Svaghed |[114] altsaa forøger Din Styrke, thi naar »Guds Kraft« »fuldkommes« i Skrøbelighed, saa er Du jo dog vel saaledes stærkere end i al egen Kraft, saasandt Guds Kraft er den] stærk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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