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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무정신성(åndløshed)과 정신의 부재(manglen på ånd)의 차이 본문

철학/사상

키르케고르의 무정신성(åndløshed)과 정신의 부재(manglen på ånd)의 차이

엉클창 2024. 12. 5. 23:21

 

키르케고르에게 무정신성(åndløshed)과 정신의 부재(manglen på ånd)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의 차이는 그가 정신(ånd)을 인간 존재의 중심적인 측면으로 어떻게 이해했는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1. 무정신성(åndløshed):

무정신성은 정신이 이미 존재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거나 억압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정신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그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상태이다.
키르케고르는 무정신성을 종종 절망(fortvivlelse)과 연결짓는데, 이는 자신의 참된 자아(정신적 자아)를 찾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삶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기준이나 외부의 기대에 따라 살아가며, 내면의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 사람은 무정신적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가 보기에 더 정확히 설명하면, 대문자인 Spirit(성령)을 받은 크리스천이 이미 그 정신이 있는 상태이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삶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 말로 옮기면 마치 '얼 빠진 상태'와도 같습니다.

 

2. 정신의 부재(manglen på ånd):

정신의 부재는 아직 정신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키르케고르의 사상에서 이는 인간 존재의 초기 상태, 즉 무죄 상태(uskyld, 순진함)와 연결된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만 존재하며, 아직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이해하거나 자신의 정신적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상태는 무의식적 평화(innocence)를 포함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정신의 잠재성을 실현하지 못한 미완성 상태이기도 한다.

 

3. 두 개념의 차이:

무정신성은 이미 정신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며, 이는 자유와 선택의 문제와 관련된다.
반면에 정신의 부재는 정신이 형성되거나 자각되기 이전의 상태로, 이는 인간이 아직 본격적으로 자유와 선택의 주체가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개인적 평가: 기독교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만,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지 못한 상태를 일커러 "무정신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며, '정신의 부재'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4. 결론: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정신의 부재는 인간 존재의 초기 상태(무죄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며, 이는 발전의 가능성을 함축합니다. 반면, 무정신성은 정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상태로, 이는 윤리적 책임과 선택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뤄집니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더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성령의 존재 여부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조금 더 기독교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정신성(åndløshed): 성령(Spirit)을 받은 후에도 그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 상태

무정신성은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과 연결하여 설명한 개념으로, 자신의 참된 자아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성령(대문자 Spirit)을 받은 크리스천이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면서 자신의 욕망이나 세속적인 목표에 따라 살아가는 상태와 유사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만들고, 참된 자기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요한복음 8:32).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도 “무정신성”에 빠져 있다면, 이는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반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절망 안에서의 죄“로 설명하며, 특히 “죄는 진리를 알면서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 정신의 부재(manglen på ånd):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 하나님 앞에 서본 적이 없는 상태

정신의 부재는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인간이 여전히 “영적 각성”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 즉 아직 하나님 앞에 서보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방인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정신”으로서의 자기(self)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자기(Self)“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의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는 여전히 “정신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단순히 무지하거나 무죄한 상태(innocence)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서 “정신의 부재”를 나타냅니다.

 

3. 기독교적 구분:

무정신성:

성령(Spirit)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아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상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나,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함.
키르케고르의 절망(despair)과 연결되며, 이는 신앙의 부재뿐 아니라 신앙의 왜곡을 포함.
바울의 표현으로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 5:19)는 경고와 관련.

정신의 부재: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 하나님 앞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한 상태.
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이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정의됨.
이는 아담의 무죄 상태(uskyld)와도 연결되며, 아직 죄의 자각이나 영적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결국,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영적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의하며, 이 관계가 없거나 왜곡된 상태는 모두 궁극적으로 절망(despair)으로 귀결된다고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