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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마크 테일러의 키르케고르 오독

by 엉클창 2025. 6. 17.

Mark C. Taylor의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1984)

 

Taylor는 이 책에서 키르케고르를 데리다적 해체철학의 선구자이자, 신학적 구조 해체의 사례로 삼지만, 실상은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진리성과 종교성을 구조주의적 언어 게임으로 환원시키는 철저한 전도(reversal)를 수행하고 있다. 이 분석은 그 왜곡과 깊이를 동시에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다.

 


 

📘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속 Kierkegaard 분석

 

1.  가명성과 주체의 해체

 

Taylor는 키르케고르의 가명저작을 주체성 해체의 실험으로 읽는다:

 

“Kierkegaard’s pseudonymous authorship inscribes the deconstruction of identity… the author dies many times.”

 

  • 그는 『두려움과 떨림』의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죽음에 이르는 병』의 안티클리마쿠스를 실존적 인격이 아닌 해체적 실험실로 본다.
  • 키르케고르의 ‘저자 없음’(no author)은 데리다의 저자의 죽음 개념에 맞춰진다.
  • 결과적으로, 단독자자(den Enkelte)라는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중심 개념은 언어 안에서 분열된 위치의 놀이로 전락된다.

 

비판: 키르케고르의 가명성은 주체의 해체를 위한 게 아니라, 독자가 진리에 이르기 위한 실존의 준비 작업이다. 그는 결국 한 인격(=진리를 향해 결단하는 실존)을 요구한다. (”저자의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서는 생생한 인격”)

 


 

2.  절망과 정체성의 미끄러짐

Taylor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절망을 ‘정체성의 붕괴’, 존재의 파편화로 읽는다:

 

“Despair is not the sickness unto death, but the trace of difference that resists closure.”

 

  • 절망은 더 이상 하나님을 상실한 실존의 병이 아니라, 정체성의 비결정성과 차이의 운동이 만들어낸 효과이다.
  • “절망하는 자”는 더 이상 구원을 향한 실존적 긴장이 아니라, 고정되지 않는 언어적 흔적이다.

 

비판: 키르케고르에게 절망은 자기기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절망은 구조가 아니라 결단을 요청하는 실존의 심연이다. Taylor는 이 심연을 사유의 유희로 소비한다.

 


 

3.  신앙과 부재의 사건

 

Taylor는 아브라함의 신앙(≪공포와 떨림≫)을 의미의 부재를 수용하는 행위, 하나님이 없는 자리에 머무는 용기로 해석한다:

 

“Faith is the errant gesture of holding on to what cannot be named… to believe in the absent God.”

 

  • 하나님은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미루어지는 사건(event)이다.
  • 신앙은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결여를 견디는 방식이다.

 

비판: 키르케고르에게 신앙은 결여의 수용이 아니라, 신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역설의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상실한 자가 아니라, 불합리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자이다. Taylor는 이를 해체적 침묵의 기호로 축소시킨다.

 


 

4.  a/theology와 신의 죽음

 

Taylor는 전통적 유신론(theology)과 무신론(atheism)의 경계를 해체하여 a/theology를 말한다:

 

“The God of a/theology is not present, nor absent — God is the spacing of differance.”

 

  • 여기서 하나님은 존재자도 아니고 비존재자도 아니다. 오직 차이와 지연의 장소(trace)일 뿐이다.
  • 이는 사신신학의 언어를 완전히 후기 구조주의로 치환한 결과다.

 

비판: 키르케고르는 하나님을 “차이”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실제로 존재하되 이해 불가능한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Taylor는 이를 형이상학적 억압으로 간주하고 해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성과 실존적 타자성을 제거한다.

 


 

🧩 종합 비교: Kierkegaard vs Taylor

개념 Kierkegaard Taylor
가명 진리를 위한 간접화법, 실존 훈련 주체 해체의 언어 실험
절망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상태 정체성의 파열과 차이의 흔적
신앙 역설적 실존 결단, 실재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의미의 부재를 견디는 미끄러지는 행위
하나님 불합리하지만 실제하는 인격적 실재 없음/부재/차이의 사건
진리 “진리는 주관성이다”, 살아야 하는 실존 고정되지 않는 해체적 흔적, 없음

 


 

✅ 결론

 

마크 테일러는 키르케고르의 언어, 가명성, 절망, 신앙 개념을 모두 후기 구조주의 언어철학으로 해석하여, 키르케고르를 사신신학적 언어유희의 원형으로 전도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정체성—즉, 신 앞에서의 실존적 결단과 절대자의 실재”라는 핵심을 본질적으로 오독하거나 제거한다. 그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해체하는 자”로 키르케고르를 재구성한다. 결국 Taylor는 키르케고르를 인용하지만, 키르케고르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