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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철학의 부스러기 영역본 57쪽 해설

by 엉클창 2025. 6. 17.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일이며, 배우는 자들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그에게는 그 일로부터의 쉼이다.

 

철학의 부스러기 57쪽 해설

이 문맥에서 안식(休息, Hvile)은 단순한 수동적 쉼이 아니라 변증법적 실재로서의 안식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단순한 노동의 부재나 육체적 정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목적을 이루어 충만해지는 운동의 결과로서의 안식이며, 역설적으로 ‘역동적인 완성’이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안식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완성의 표현이다

 

  • 창세기 2장 3절에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으로 인해 그 안에서 머무시는 것이다.
  • 따라서 ‘쉼’은 단절이 아니라 충만한 실재의 자기 내주로서, 존재가 자기 목적에 도달했음을 뜻하는 운동의 정점이다.

 


 

2.  키르케고르의 맥락에서 ‘안식’은 사랑의 긴장 속에 있다

 

  • 『철학의 부스러기』에서 “그의 가르침은 그에게 먹을거리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노동이며, 제자들을 염려하는 것이 그의 안식이다”라고 할 때,
  • ‘염려함’(Bekymring)은 오히려 사랑의 활동이며, 그 안에서 그는 쉰다.
  • 이 구조는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말이 오히려 창조의 사랑 안에서 활동적으로 내재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3.  변증법적 안식: 정지와 운동의 통합

 

  •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안식은 움직이지 않음의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존재의 목적이 실현된 운동의 정지다.
  • 즉, 윤리적 혹은 종교적 존재가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 그 책임감 안에서 쉼을 얻는다. 이건 단순한 무위(無爲)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 안에서의 내적 평안이다.

 


요약하자면,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안식’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부재나 종결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안에서 충만해지고 타자를 사랑함으로써 자기 목적을 실현하는 운동의 완성으로서의 평온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신의 안식과 인간 스승의 안식은, 시간 속에 나타난 참 신(Guden i Tiden)의 역설적 현존이라는 맥락 안에서 철저히 실존적이고 변증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