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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30:17, Pap. XI1 A187(1854년) 기적에 대하여 본문
NB30:17, Pap. XI1 A187(1854년)
기적
신약성서에서, 기적은 크리스천이 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막16:17) 이것 역시 기독교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기적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허튼 수작 대신, 이 원리는 다음과 같이 선포될 수 있다. 더 이상이 기적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Aber(그러나) 기독교는 기적과 완전히 독특한 관계를 갖는다. 기적은 돈이 도움이 되도록, 유익이 되도록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위험과 고난을 피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도’, 혹은 ‘제자’를 그냥 내버려두고, 그를 온갖 종류의 고난으로 모험하도록 도우신다. 그가 자발적으로 그런 위험과 고난에 자신을 노출하라고 요구하신다.―그때 그는 기적을 선물로 받는다.* 그렇다. 단지 인간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조건이 주어질 때, 기적의 선물을 갖는 것은 하나가 더해진 큰 고난이다. 즉, 굶주린다.―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기적의 선물을 받는다. 더 나아가, 기적의 선물은 사람들이 그에게 반대하도록 계획된다.
보라, 이것이 더 이상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렇다. 우리는 가정을 가진 교육받은 남자에게 안정적인 승진과 함께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직책을 받는 조건으로 기독교의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
나의 제안은 우리가―겸손하게―기독교를 회피하는 이 위선적 방법을 끝낼 만큼 정직해야 한다는 데 있다. 나는 더 멀리 모험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위선은 그렇게도 깊고, 악의적이어서 사람들은 나와 그들을 위해 내가 바랐던 만큼 이 정직함에 동의하지도 않을 것이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린도후서 6: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린도후서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상의 구절에서처럼 바울은 그가 굶주림으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서술한다.
The Miracle.
In the New Testament, the miracle is depicted as inseparable from being Christian (Mk 16:17), and this is also Xnty’s view, so that instead of the nonsense that miracles are no longer needed, the principle can be proclaimed that, if there are no longer any miracles, Xnty simply does not exist.
Aber it [Christianity] has an entirely unique relationship to the miracle. The miracle is not received in order that money might be made with its aid, nor for profit, nor in order to avoid danger and suffering. On the contrary, in this respect God continually leaves the “apostle” or the “disciple” very much in the lurch, helps him venture forth into every sort of suffering, and demands that he should willingly expose himself to them―and then he receives the gift of the miracle. Yes, understood in merely hum. terms, given these conditions, it is one great additional suffering to have the gift of the miracle: one hungers―and in this way receives the gift of the miracle. Further, the gift of the miracle is calculated to arouse peoples’ opposition to him.
You see, this is why miracles are no longer needed. No, we would rather become teachers of Xnty on the condition we receive a secure, well-paid post with steady advancement for an educated man with family.
My suggestion has always been that we should at least be honest enough to put an end to this hypocritical way in which we―humbly―evade Xnty. I venture no further; at least I have not done so thus far. But the hypocrisy is perhaps so deep and so malevolent that hum. beings will neither assent to nor adopt this honesty as I wished they would, both for my sake and for the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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