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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11/06 (5)
프라우스
NB20:152, Pap. X3 A 413, 1850년간접 소통직접 소통이 간접 소통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간접 소통을 그저 적당히라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평생 동안 간접 소통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이 점에서 이미 직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오직 하나님-사람(그리스도)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간접적 소통이다. 그분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분을 무한히 필요로 했다. 그분은 인간을 사랑하지만, 그 자신의 개념에 따른 사랑을 한다. 따라서 그분은 인간의 사랑 개념에 맞추어 자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며, 종의 형상으로 존재하여[i] 실족할 가능성을..
NB20:150, Pap. X3 A 411, 1850년동시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내린 판단이제 또다시 내가 율법만을 설교하고, 본받음(따름)을 너무 강하게 주장한다는 비난이 들려올 것이다(내가 새 책 『기독교 실천』의 서문에서 은혜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난은 이렇게 흐를 것이다: 여기에서 멈출 수 없으며, 더 나아가야 한다―즉, 고요함과 평안을 주는 은혜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그러나 그건 완전한 헛소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단순한 사소한 일로 축소되었고, 은혜 교리가 희화화된 판본처럼 되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 은혜만 기대하면 되는 것으로 전락했다.기독교의 모든 것이 이처럼 사소한 것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독교의 열정적인 요소들을 제시할 때 그것을..
NB20:149, Pap. X3 A 410, 1850년한숨 아, 때때로 이런 식이다. 어느 것이 더 심각할까? 율법[i]이 선포될 때의 불안일까, 아니면 내가 은혜를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일까?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은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은혜는 바로 이러한 불안까지도 없애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i] 율법(Loven): 이는 바울-루터 전통에서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의미한다. 율법은 인간을 심판하며(예: 로마서 7장),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훈육자 역할을 한다(갈라디아서 3장 23-24절 참조). 반면,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로마서 10장 4절)는 메시지를 전한다.
NB20:148, Pap. X3 A 409모범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셨을 때, 그는 분명 모범이셨다. 믿음의 과제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한 사람에게 실족하지 않고 믿으며, 그를 따라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그러다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다. 이제 사도 바울[i]을 통해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죄(화해, Forsoningen)으로서 무한히 강조한다.[ii]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Forsonings Død)이 된다.이로써 모범으로서 모범은 더 큰 거리로 멀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며, 모범으로서 이 땅에 걸어다니셨을 때는, 존재(Tilværelsen) 자체가 마치 산산이 부서진 것처럼 보였으니, 절대자는 항상 존재(Tilværelsen)를 부숴놓기 때문이다...
경건주의적 신비주의(Qietistic mysticism)는 영적 평온과 내적 고요를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전통입니다. 이 사상은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상태를 추구하며, 이러한 내적 평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경건주의는 종종 인간의 활동적인 종교적 노력보다는 내면의 침묵과 영혼의 수동적 상태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합니다.경건주의는 특히 17세기의 스페인 신비주의자 미겔 데 몰리노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프랑스의 마담 귀용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개인의 열정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를 배제하고, 내적 침묵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영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