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상 썸네일형 리스트형 위선과 실족, 불안의 개념 4장 참고 [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관계 ] │ ┌────────────────────────┼────────────────────────┐ │ │ [ 위선 (Hykleri) ] [ 실족 (Forargelse) ] │ │1. 능동성을 통해 시작됨 1. 수동성을 통해 시작됨2. 진리 앞에서 연기함 2. 진리 앞에서.. 더보기 이것이냐 저것이냐 1부 황홀한 연설에서 “만약 내가 어떤 근본 원칙(Grundsætning)에서 출발했다면, 나는 결코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을 후회할 것이고, 멈춘다고 해도 역시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출발하지 않기에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나의 영원한 출발(Evige Udgang)은 곧 나의 영원한 멈춤(Evige Ophør)이다.경험에 따르면, 철학이 시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무(Intet)’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과 철학자들에게 어려운 것은 오히려 멈추는 것이다.나 또한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지금 멈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사변적 개념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지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더보기 불안의 개념 4장, 셸링, 행위의 천재에 대한 해설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초고(Pap. V B 56,6 및 72,21)에서 셸링(Schelling)의 초월적 관념론의 체계(System des transcendentalen Idealismus)를 자신이 참조한 출처로 언급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셸링의 발언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높다:“여기에는, 예를 들어, 재능(talent)이나 천재(genius)라고 불리는 것이 포함되며, 이는 단지 예술이나 학문에 대한 천재성뿐만 아니라 행동에 대한 천재성도 포함된다.이것은 냉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 본성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의 가장 고귀한 기능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법을 초월하여 자유롭고 고양된 정신으로 행동할 능력을 결코 가질 수.. 더보기 광적인 회개와 엔도 슈사쿠의 기치지로 키르케고르가 설명하는 광적인 후회(vanvittige Anger)와 불안(Angest)의 관계는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Endō Shūsaku)의 『침묵(沈黙)』 속 배신자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고 볼 수 있어. 특히, 후회와 불안이 죄의 반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과 자유를 상실하는 실존적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1. 키르케고르의 회개와 배신자의 불안키르케고르가 설명하는 회개의 메커니즘을 『침묵』 속 **기치지로(キチジロー, Kichijiro)**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키르케고르: 죄와 회개의 반복 • 한 개인이 죄를 짓고 회개한다. 그러나 회개는 그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며, 오히려 불안이 회개의 힘을 빨아들이면서 다시 죄를 짓게 만든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를 반복하며, 불안.. 더보기 멸절설과 불안의 개념 4장 키르케고르의 논의가 **멸절설(Annihilationism, 소멸설)**과 동일한 것인지 여부를 검토하려면, 멸절설의 개념과 그의 신학적 입장이 어떻게 차별되는지를 분석해야 해. 결론부터 말하면, 키르케고르의 논의는 멸절설과 일부 유사한 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다.1. 멸절설(Annihilationism)이란?멸절설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영원한 의식적 고통) 교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악인들은 최종적으로 소멸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신학적 견해이다. 📌 주요 특징 1. 심판 후 악인들은 ‘영원한 고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된다.2. 하나님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3. 영생은 오직 의로운 자들에게만 주어지.. 더보기 언어는 존재의 집인가?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Das Wesen der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이라는 개념과, 탈레랑 및 영(Young)의 “언어는 사고를 감추는 도구”**라는 개념은 일종의 정반대 관계에 놓일 수 있다. 1. 하이데거(Heidegger)의 언어관 •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場)이다. 즉, 존재(Sein)는 언어를 통해 열린다, 그리고 언어 속에서 인간은 존재와 관계 맺는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과 접촉하는 근원적인 방식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존재의 진리를 경험한다. 2. 탈레랑과 영(Young)의 언어관 • 언어는 본래 사고를 표.. 더보기 원죄적 죄책(Arveskyld)과 원죄(Arvesynd) 원죄적 죄책(Arveskyld)과 원죄(Arvesynd)은 서로 밀접한 개념이지만 차이가 있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방식과 기독교 신학에서의 전통적인 개념을 함께 살펴보자.1. 원죄(Arvesynd)란? • 기독교 신학에서 원죄(原罪, Arvesynd) 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교리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타락을 의미하며, 개별적인 행위 이전에 존재하는 상태다.• 즉,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의 영향 아래 있고,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원죄를 “세습된 죄”로 보았고, 이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인류에게 전이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 성경에서는 로마서 5:12 에서 이를 강조한다.“그러므로 한 사람.. 더보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키르케고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비판적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현대가 비극적 감각을 상실하고, 인간을 철저히 개인화(individualisering)하면서, 결국 “스스로 돕지 않으면 하늘도 돕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으로 전락했다고 본다.관련하여, 이것이냐 저것이냐, 1부, 영역본 140쪽을 참고하라. 1. 키르케고르의 비판: 연민(同情)의 상실과 “스스로 돕는 자”의 논리키르케고르는 현대 사회가 가족, 국가, 혈통 등 실체적(substantielle) 요소를 상실하면서, 각 개인을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내맡기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개인은 자기 자신의 창조자(sin egen Skaber) 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진다. • 과거의 비극적 구조• 고대 비극에서.. 더보기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