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만츠(Felix Manz)는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이라는 급진적인 재세례파(Anabaptists)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성인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후에만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당시 기성 교회,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루터파 및 칼뱅파 교회와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펠릭스 만츠가 집에서 모여 침례를 행한 것은 당시 교회법과 사회 질서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 **교회 권위에 대한 도전**: 당시 기성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에서는 침례는 반드시 성직자에 의해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펠릭스 만츠와 같은 재세례파 지도자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침례를 행한 것은 교회의 권위에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적, 종교적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2. **침례의 유효성 문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전통에서는 교회의 정식 성직자가 집례한 침례만이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평신도나 교회에 의해 인정받지 않은 인물이 집에서 행한 침례는 교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침례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성례전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3. **재세례파의 신학적 이단성**: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무효로 간주하고 성인 침례만을 인정했는데, 이는 당시 교회의 신학적 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기성 교회는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간주했고, 그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탄압했습니다. 펠릭스 만츠와 그의 동료들이 행한 침례는 이러한 이단적인 행위로 여겨졌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심각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4. **공동체와 사회 질서에 대한 위협**: 재세례파는 단순히 종교적 이단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평등주의적 신념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 사회 질서에도 위협이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특히 만츠와 같은 인물이 교회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종교 활동을 행한 것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펠릭스 만츠가 집에서 모여 침례를 행한 것은 당시 기성 교회의 교리적, 제도적 질서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그가 이단으로 규정되고 처형당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