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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20:148, Pap. X3 A 409, 1850년 모범과 제자도 본문
NB20:148, Pap. X3 A 409
모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셨을 때, 그는 분명 모범이셨다. 믿음의 과제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한 사람에게 실족하지 않고 믿으며, 그를 따라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다. 이제 사도 바울[i]을 통해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속죄(화해, Forsoningen)으로서 무한히 강조한다.[ii]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Forsonings Død)이 된다.
이로써 모범으로서 모범은 더 큰 거리로 멀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며, 모범으로서 이 땅에 걸어다니셨을 때는, 존재(Tilværelsen) 자체가 마치 산산이 부서진 것처럼 보였으니, 절대자는 항상 존재(Tilværelsen)를 부숴놓기 때문이다.
이제 변화가 일어나고, 모범은 그 죽음, 즉 속죄의 죽음이 특히 강조되는 대상으로 변모된다.
사도가 이 가르침을 전하는 동안, 그의 삶은 본받음(Efterfølgelsen, 따름)을 표현한다. 그러나 사도가 자신의 본받음(따름)으로 그리스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신성모독적인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는 주의를 본받음(따름)에서 돌려 모범의 속죄의 죽음에 결정적으로 집중시킨다.
이분이 우리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이 땅의 삶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본받음(따름)이 잘못 해석되어 강조되었다.[iii] 루터는 그 관계를 올바르게 되돌렸다.[iv]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루터를 오용하여 본받음(따름)을 완전히 배제하고 “은혜(Naaden)”를 헛되이 사용하고 있다.
본받음(따름)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여기거나 구원을 얻으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은혜가 결정적인 것이다.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려면, “은혜”는 삶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본받음(따름)을 표현하는 사람에 의해 선포되어야 한다. 만약 본받음(따름)과는 반대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은혜를 전한다면, 그것은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엄격히 본받음(따름)을 표현하는 사람이 은혜를 전한다면, 관계는 진정성이 있고 은혜가 참되게 존중된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러한 사람이 거의 공로[v]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일수록, 그가 전하는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더욱 참되게 드러난다.
이로써 다시 한 번 기독교는 그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단순한 “교리”와는 가능한 한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 사도 바울: 초기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소아시아의 다소에서 태어난 헬레니즘 유대인으로, 바리새파 교육을 받았으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유대인 동포들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다. 약 서기 40년경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경험한 후 부름을 받았고, 그때부터 비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개종을 유대교로의 전환 없이도 할 수 있는 선교 방식을 창시한 인물로 여겨지며, 서기 65년경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 중에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가르침은 주로 그가 51-55년에 쓴 편지들로부터 알려졌으며, 이 편지들은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다. 신약에 바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13개의 서신이 키르케고르 시대에는 모두 진본으로 간주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그중 7~9개가 진본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진본 서신으로는 신약성경 중 가장 오래된 데살로니가전서, 로마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가 있다. 이 서신들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아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한다. 바울에 관한 또 다른 주요 자료인 사도행전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후기의 이방인 사도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ii] 예를 들어, 로마서 3장 23-26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추가로 로마서 5장 8-11절; 6장 10-11절; 고린도전서 15장 3-4절; 고린도후서 5장 14-21절; 에베소서 1장 7절; 골로새서 1장 14-20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9-10절을 참고할 수 있다.
[iii] 이는 중세에 널리 퍼진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 Christi) 또는 그리스도의 따름이 강조된 현상을 암시한다. 이 사상은 특히 수도원 운동과 신비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예를 들어, 12세기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가난, 겸손, 고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강조했다. 고난 신비주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따름으로써 완전함에 이르는 길로 보았고, 경건주의적 신비주의는 영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따라야 한다고 했으며, 개인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덕, 특히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15세기의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De imitatione Christi, 목록 273 참조)라는 네 권의 책을 통해 그리스도의 따름 사상을 널리 퍼뜨렸으며, 이 사상은 15세기 경건 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건주의적 신비주의(Qietistic mysticism)는 영적 평온과 내적 고요를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전통이다. 이 사상은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상태를 추구하며, 이러한 내적 평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경건주의는 종종 인간의 활동적인 종교적 노력보다는 내면의 침묵과 영혼의 수동적 상태를 통해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경건주의는 특히 17세기의 스페인 신비주의자 미겔 데 몰리노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프랑스의 마담 귀용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발전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개인의 열정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를 배제하고, 내적 침묵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영혼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되며,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온전한 의존을 이루게 된다.
경건주의는 중세 신비주의와 연관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자기 희생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강조한다.
[iv] 예를 들어, 루터는 기독교 설교집 제1권 XII-XIV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마치 모세처럼 단순한 교사이자 모범으로만 여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복음을 단지 가르침이나 율법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 고난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베드로가 그의 서신 2장 21절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고 우리에게 본을 남기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기도하고, 금식하고, 사람들을 도우며 긍휼히 여기셨듯이 당신도 자신과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가장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복음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리스도는 다른 성인들 이상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그 자신에게만 머무르고, 당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런 방식은 사람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않고, 단지 위선자로 만들 뿐입니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이것이 설교의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져 왔고, 여전히 일부는 부족하게나마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복음의 근본이자 핵심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그분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과 은혜로 인정하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가 무언가를 행하시거나 고난을 겪으시는 것을 보고 듣게 될 때, 그분의 행위와 고난이 당신의 것이며, 마치 당신이 직접 한 것처럼, 아니,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처럼 여기며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의 기초이자 근본적인 선물로 삼았다면, 그 다음 단계로서 그를 모범으로 삼고, 그분이 당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당신도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가 선물로서 당신의 믿음을 양육하고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며, 그리스도가 모범으로서 당신의 행동을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이 행위들은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않지만, 당신이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선물과 모범 사이에 있는 차이는 믿음과 행위 사이의 차이와 같습니다.
당신이 그가 행하시고 도움을 베푸신 것처럼 그가 다가오는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볼 때, 믿음은 당신 안에서 동일한 일을 하며, 그가 복음을 통해 당신의 영혼에 같은 도움과 은혜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멈추고 스스로 위안을 얻으면, 당신은 그것을 이해한 것이며, 그리스도는 당신의 것이 됩니다. 그는 당신에게 선물로 주어졌으며, 당신을 위로하고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참으로 당신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당신도 이웃을 돕고, 이웃에게 선물과 모범이 되며,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이중의 선물과 모범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v] 공로(det Fortjenstliges): 공로는 칭찬받을 만한 것, 자격이 있는 것을 의미하며, 루터교 교리에서 자신의 행위나 성취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개념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개념은 자발적 가난, 금욕, 금식, 성지 순례 등과 같은 행위를 포함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구원에 필요한 자격을 얻는다고 여기는 것이 오류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이러한 개념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제4조, 제6조, 제20조에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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