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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신비주의 관련 일기 모음

by 엉클창 2025. 11. 17.

 

 

마태복음 11장 12절은 신비주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적절하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여기서 나는 이 구절을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신학의 영역 밖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모든 인간은 오직 간접적 관계(교회—그리고 정치 분야에서는 국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관계 맺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Pap. I A 168, 1836년 6월 6일

 


 

Mysticism does not have the patience to wait for God's revelation.

III A 8 July 11, 1840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릴 인내를 가지지 못한다.

—Pap. III A 8, 1840년 7월 11일

 


 

특정한 새의 울음소리가 밤의 고요 속에서만 들리듯이, 신비주의자의 목소리도 오직 밤의 정적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는 대체로 시끄러운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역사의 고요 속에서 귀 기울이는 영혼의 친족들에게는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 Pap. III A 70, 1840년 (날짜 없음)

 


체계(System)는 ‘무(無)’에서 시작하고, 신비주의자는 언제나 ‘무(無)’로 끝난다.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이 ‘무’는 신적(神的) 무(無)이며, 마치 소크라테스의 무지(ignorance)가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었던 것처럼, 즉 소크라테스가 그 무지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무지에 이르렀고, 혹은 끊임없이 그 무지에 도달했던 것과 같다.

— Pap. X2 A 340 n.d., 1850

일기 해설

키르케고르는 이 일기에서 신비주의(Mystik)의 본질을 “무(無)로의 침잠”으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기독교적 실존을 파괴하는 위험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적 체계는 추상적 “무(無)”에서 출발하고, 신비주의는 모든 구별과 개체성을 소멸시키는 “신적 무(無)”에서 종결을 맞지만, 양자는 모두 역사적·실존적 구체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오류를 공유한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소크라테스적 무지(ignorantia)와 대비시키는데,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출발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달해가는 실존적·경건한 자기인식의 형태이며, 신비주의적 무와 달리 자아의 소멸이 아니라 자아의 진리 앞에서의 각성이다. 따라서 신비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중보(Christus), 역설(Paradox), 실존적 결단을 제거하여 직접성(immediacy)의 오류로 돌아가게 하고, 결국 기독교를 비역사적·비실존적 자연종교로 전락시킨다고 그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