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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일기 및 기록물 정리

KK:3 Sack의 책 요약

by 엉클창 2025. 11. 18.

KK:3, II C 60 

Dr. Karl Heinrich Sack, 『Christliche Polemik』. 함부르크: Fr. Perthes, 1838.

지금까지 이 책을 읽어본 바로는, 꽤 좋은 내용들이 많지만 학문적이라기보다 다소 대중적(populairt)이다. 종종 오히려 건덕적(opbyggeligt)인 부분들이 있는데, 이것이 어떤 학교적 구분(Skoleinddelinger)들과 기묘한 방식으로 뒤섞여 있다.

서문(Indledning)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 없으나, 본문 첫 부분에서 다루는 무관심주의(Indifferentismus)에 대한 연구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우며, 훨씬 더 학문적 의미를 담아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무관심주의의 두 가지 주요 형태는 자연주의(Naturalismus)와 신화주의(Mythologismus)이다. (이 구분은 무관심주의가 실재적인 측면을 따르는가, 아니면 이념적인 측면을 따르는가에 따른 차이를 말하는데, 사실 이러한 구분의 근거는 다시 말해 그저 ‘학교적 사소함(Skole-Kummerligheder)’에 불과하며, 별 의미가 없다.)

 

자연주의(Naturalismus)

기독교적 자연주의(den christelige Naturalismus)는 일반적인 데이즘적·자연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그리스도교(Xstd.)의 긍정적인 것(det Positive)을 공격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자연적인 것과 무차별화(indifferenzerer)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자연주의는 그리스도교를 종교적 충동(religions-Trangen)의 자연적 충족으로만 이해하며, 종교와 자연 사이의 차이에 대해 무관심하다(indifferent).

자연주의는 기적(Underet), 신비(Hemmeligheder), 성서(hellige Skrifter)에 대해 무관심한데, 그 이유는 계시(Aabenbaringen)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den treenige Gud)과 그가 보내신 이의 권위(hans Anseelse)를 인정하는 데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모든 것에도 무관심하며, 그의 가르침과 제정(Stiftelser)에서 오직 자연적·심리적 ‘자극(Anregung)’만을 인정할 뿐이다.

Mythologismus(신화주의)

신화주의는, 비기독교적 종교들 안에 있는 신화적 요소(Mythiske)를 그리스도교(Xstd.) 안에 있는 신적·계시적 요소(Guddommelige)와 같은 수준에 놓는 무관심주의의 한 형태이다.

신화주의에서는 하나님의 계시(Guds Aabenbaring)가 ‘아름다움(Det Skjønne)의 현현’에 놓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지신 뜻, 죄(Synden), 구속(Forløsning)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Litteralismus(문자주의)

문자주의는, 종교의 껍데기(Hylster)를 붙잡고 있으면 곧 종교 그 자체를 소유한 것이라 생각하는 착오이다.

문자주의의 역사적 발전은,
종교적 열기가 이미 식어버린 상태(“Lunkenhed”)와 시대에 뒤떨어진(“forældede”), 형식적으로 과도하게 발달된 인간적 형식들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문자주의의 두 주요 형태는

① Ergismus(업적주의)
② Orthodoxismus(정통주의적 문자주의)

이다.

Ergismus(업적주의)

업적주의의 본질은 그리스도교 안의 모든 것이 구원을 위한 종교적 행위를 산출하는 데 있는 것처럼 여기는 착오이다. 업적주의에서 믿음(Troen)은 의롭게 하는 방편(Retfærdiggjørelsens Middel)이 아니라 단지 행위의 시작과 뿌리일 뿐이다.

업적주의는

(1) 행위들 사이에 거짓된 구분을 만들어내고,
(2)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위들을 오히려 조장한다.

Orthodoxismus(정통주의적 문자주의)

정통주의적 문자주의는, 정통 교리의 글자 그대로의 형식(Bogstavelige)이 복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형태이다. 이 입장은 성경 교리에 대한 왜곡된 존중 때문에 전통적 교회 형식이나 고백문서에 근거 없는 권위를 부여하게 된다.

정통주의적 문자주의는 신적 것을 인간처럼 이해하고(menschengleich), 신비한 것을 경험적으로(empirisk),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화목되었다’는 표현은 성경에 없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신들(복음주의 교회신문)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 수 없다.”

Spiritualismus(영성주의/영지주의적 영성주의)

영성주의는 하나님의 말씀(Ord)으로부터 분리된 채 종교적 영적 삶을 찾으려는 착오이다.

영성주의의 역사적 등장은

(1) 학문의 특정한 발전 단계,
(2) 법적 억압이 제거된 후 영적 자유가 허용된 상황

에 따라 나타난다.

영성주의의 두 주요 형태는

① Rationalisme(합리주의)
② Gnosticisme(영지주의)

이다.

 

Rationalisme(합리주의)

합리주의는 인간 이성과 기독교 종교의 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데 있다. 합리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죄(den nedarvede Syndighed)를 부정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 중보자(Midler)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버린다.

합리주의는 그리스도의 신성(Christi Guddommelighed)과 속죄의 객관성(Forsoningens Objektivitæt)을 부정하여 구속을 단지 도덕적 모범으로 만들 뿐이다.

합리주의가 속죄의 객관성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의로우신 분의 죽음이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개념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
b) 신약의 관련 진술들은 증명력이 없으며, 단지 유대적 제사 제도에 대한 ‘조정(accommodation)’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
c)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객관적 속죄 교리가 도덕성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

 

합리주의는 성경 사용에 있어 교묘한 지적 태도(spidsfindig Aand)를 퍼뜨림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모든 확고한 기초를 무너뜨린다.

 

Gnosticisme(영지주의)

영지주의는 영성주의(Spiritualismus)의 한 형태로, 인식(Erkjendelsen)이 하나님의 말씀(Ord)을 초월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합일(unio)로 나아가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견해이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적 영적 삶(Aands-Liv)에 대해 그 완성이 사변적 인식(speculative Viden)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개념을 세운다.

영지주의에 속하는 견해는 모두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가진다.

1. 믿음(Troen)을 더 낮은 단계로 보고, 그것이 결국 인식에 의해 극복되고 흡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견해
2. 역사적 그리스도(Χstus)와 그의 말씀과 행위를 하나의 “지나가는 순간(øjeblik)”으로 간주하는 견해
3. 절대적 영의 단계(den absolute Aands Standpunkt)가 실제적 삶의 단계보다 더 높다고 여기는 견해

 

영지주의는 죄(Synden)를 자유로운 불순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구속(Forløsningen)도 단지 세계의 자기 전개(Selfudvikling)로만 이해한다.

Sack이 p. 278에서 영지주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매우 탁월하며, 내가 생각해온 것과도 잘 맞으며, 이 책에서 Schaller에 관해 말한 부분에서도 그 암시를 찾을 수 있다.

Separatisme(분리주의)

분리주의는, 더 ‘살아있는 믿음’을 명분으로 삼아 교회 안의 온전한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려는 마음의 경향이다.

분리주의의 두 주요 형태는

1. Mysticisme(신비주의)
2. Pietisme(경건주의)

이다.

 

Mysticisme(신비주의)

신비주의는 감정(Følelsen)과 상상력(Phantasiens)이 교회 안의 합리적 사고의 흐름(fornuftige Tanke-Omløb)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직접적 의식(umiddelbare Bevidsthed)을 너무 높게 올려놓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따라 성경에 부여되어야 할 권위(Anseelse)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신비주의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발전에서 ‘특수한 것(Besondere)’을 붙잡고 교회성을 떠나는 성향을 가지며, 따라서 의(義)를 빙자한 도덕적 과도함이나 인간적 것에 대한 지나친 엄격함으로 이어지기 쉽다.

 

Pietisme(경건주의)

경건주의는 감정(Følelsen)과 반성(Reflexion)이 상상력에 의해 매개된 교회의 ‘민중적 표현’(folkelige Fremtrædelse)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경건주의는 특정한 형태의 경건한 상태나 단계를 믿음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경건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끼리 뭉치게 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다양한 영적 은사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Theocratismus(신정주의)

신정주의는 ‘하나님의 것’을 인간 권위의 틀 안에서 오용하여 교회 안의 영적 생명을 억압하려는 잘못된 견해이다.

신정주의의 두 주요 형태는

1. Hierarchismus(위계주의)
2. Cæsareopapisme(황제교황주의)

이다.

 

Hierarchismus(위계주의)

위계주의는 목회자와 교사의 직무를 이해함에 있어 인간적 선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며, 믿음을 제한하는 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위계주의는 사제가 실제 제사를 반복해서 드린다고 가르쳐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침해한다. 또한 하나님의 징벌과 교회의 징계를 혼합하여, 특정한 행위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을 조장한다.

 

Cæsareopapisme(황제교황주의)

황제교황주의는 국가의 통일성(Statens Eenhed)을 교회 제도에 적용하여, 교회의 내적 생명을 어지럽히는 오류이다. 황제교황주의는 교회 안에서 장로적 요소(presbyterianske Element)를 억압하고, 교회 헌법의 발전을 방해한다. 또한 교회의 교리, 예배, 훈육의 건강한 운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마비시킨다.

— 1838년 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