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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마음의 청결에 대하여, JP IV 4435 (Pap. VII1 B 192:13) n.d., 1846 본문
폭풍이 일어나는 중에 바다가 분노할 때, 하늘이 숨겨질 때, 바다와 하늘이 이런 뒤죽박죽 상태에서 하나로 혼합될 때, 이 드라마가 아무리 끔찍해도 우리는 바다가 청결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평온이 찾아와 그들이 구별된 후에야, 저 바다 위로 하늘이 아치를 높이 그릴 때, 바다가 그 하늘을 깊은 곳에서부터 반사할 때, 그 후에야 우리는 바다가 청결하다고 말한다. 분노한 폭풍에 의해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섞이는” 가운데 청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결은 구별(distinction) 속에 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영혼을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영혼이 혼란스러운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거만하게도 선과 악의 구별을 어길 때, 그 때 영혼은 짜증나고 불결해진다. 그러나 하늘 가까이 닿은 숲과도 같은 ‘선’이 영혼 위에서 아치를 그릴 때, 그래서 영혼이 하나됨(oneness)을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만들 때, 우리는 이것을 청결하다 말한다. 선과 악 사이의 구별이란 단순성(simplicity)이고, 혼란스러운 통일은 이중성(doubleness)이다.
어린아이가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을 지혜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면, 아이에게 물어보라! 이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형상(image)이다. 선과 악을, 바다와 하늘을 구별하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부적절한가? 그러나 이 형상은 영적으로, 따라서 비가시적으로, 영혼의 비가시성 속에 숨겨져 있다. 혹은, 결국 하늘은 선이 아니고 바다는 악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부적절한 비유인가? 하지만 거기에 구별이 존재한다면, 혼란한 통일 가운데 그것을 혼합시키는 것은 사람의 능력 안에 있다. 혹은, 마음이 청결한 가운데 겸손하게 그러나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도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때 이 은유는 정말로 적절하다!
-JP IV 4435 (Pap. VII1 B 192:13) n.d.,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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