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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NB23:111, Pap. X 4A 114신앙과 실존 (Tro - Existens) 본문
NB23:111, Pap. X 4A 114
신앙과 실존 (Tro - Existens)
보통 사람들은 먼저 신앙(Troen)을 가져야 하며, 그 후에 실존(Existeren)이 따라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 마치 신앙이 실존 없이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생각을 깊이 내면화하여, 실존을 제거해 버렸다. 왜냐하면 신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매우 단순하다.
“신앙을 가지려면 먼저 실존이 있어야 한다.”
신앙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실존(Existens)이 있어야 한다. 즉, 실존적 규정(existentiel Bestemmelse)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결코 충분히 강조할 수 없다.
“신앙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 신앙을 얻는 것이 논의될 수 있기 위해서조차도 반드시 ‘상황(Situation)’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상황은 개별 인간의 실존적 결단(existentielt Skridt)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준비 과정(Propedeutik)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에서는 이 준비 과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개인이 자신의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서서히 신앙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즉, 아무런 실존적 결단 없이, 그저 학교에서 암기 공부하듯이 신앙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자 청년(den rige Yngling)의 이야기를 보라. 그에게 그리스도(Χstus)는 먼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에게 요구된 첫 번째 행동은, 그가 무한(Uendeligheden) 속으로 완전히 내던져지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나가야 한다! 7만 길(70,000 Favne) 깊은 물 위로 나가야 한다.[i] 그것이 바로 ‘상황(Situationen)’이다. 그제야 비로소 신앙을 가질 것인지, 절망할 것인지 논의될 수 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기독교는 완전히 뒤틀린 것이다.
이 단계에서 신앙은 결코 ‘공로(Fortjenstligt)’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네가 그 상황 속에서 철저히 흔들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로를 내려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신앙 이후에 따르는 또 다른 실존(Existeren)이 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단계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를 잊어버린다면, 기독교(Χstd.)는 완전히 뒤틀리고(forrykket) 왜곡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i] 이 표현은 키르케고르의 저서 『인생 길의 여러 단계(Stadier paa Livets Vei)』(1845)에서 처음 등장한다. 해당 책에서 필명 Frater Taciturnus(과묵한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영적 실존(Aands-Existents), 특히 종교적 실존(religieuse),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신앙을 가진 자(Troende)는 끊임없이 깊은 심연 위에 떠 있으며, 발 아래에는 7만 길(70,000 Favne)의 깊은 물이 있다.” (SKS 6, 411,6-8)
“7만 길(70,000 Favne)은 얼마나 깊은가?” 과거 덴마크에서 “길(favn)”은 공식적인 길이 단위였다. 1 길(favn)은 1.88미터에 해당한다. 즉, 70,000 길 = 131,600 미터(약 132km) 이는 심해의 몇 배에 달하는 깊이이다.
“키르케고르의 의미 - 신앙은 절대적 위험 속에서만 가능하다”
키르케고르는 신앙(Troen)을 단순한 사유나 감정이 아니라, 완전한 실존적 위험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는 “7만 길 깊이의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진정한 신앙은 끊임없는 실존적 불안 속에서 유지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는 곧 “실존적 결단 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즉,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내던지는 결단을 해야, 비로소 신앙을 논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설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부자 청년(den rige Yngling)의 경우, 그는 모든 재산을 버리는 실존적 결단을 요구받았다. 이는 곧 그가 7만 길 깊이의 물 위로 나아가야 했음을 의미한다.
“신앙은 위험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표현을 통해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1. 신앙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실존적 결단이다.
2. 진정한 신앙인은 끊임없이 위험한 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3. 신앙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실존적 “상황(Situation)”이 마련되어야 한다.
4. 이 상황 속에서 인간은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 “신앙을 가지든지, 절망하든지.”
즉, 신앙은 편안한 것이 아니라, 항상 “심연 위에서 떠 있는 상태”이며, 그 깊이는 무려 7만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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