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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스
JJ:87, JP V 5640 (Pap. IV A 76) n.d., 1843, 아브라함과 이삭 본문
JJ:87, JP V 5640 (Pap. IV A 76) n.d., 1843
개요
(구약성경이나 코란에 나타나지 않은 내용) 이삭이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갈 때, 그 여행의 목적인 그가 희생제물로 드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오늘날 시인이 본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가면서 한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우선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을 것을 상상해 본다.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고 위엄있는 표정을 하고 다급하게 말한다. 아들 이삭에게 아들의 운명을 인내심 있게 견디라고 권고했고, 아들의 이런 운명으로 인해서 아버지로서 겪는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희미하게나마 이해를 시켰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잠시 아들을 떠나 있다가 다시 아들에게 돌아왔을 때 이삭은 아버지의 모습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나는 상상해 본다.
아브라함의 눈은 사나웠고, 표정은 냉혹했으며, 존경스럽던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 위에서 분노한 듯이 솟아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가슴을 움켜쥐고 칼을 뽑으면서 말했다. “너는 내가 이 일을 하나님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는 아들을 살해하는 우상숭배자다. 이 열정이 내 영혼을 움직였어. 나는 너를 살해하고 싶다. 이것은 하나님이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한 거야. 나는 식인종보다 더 악한 자다. 절망하거라. 이 어리석은 꼬마야. 내가 네 아버지인 줄 아느냐? 나는 너를 죽일 살인자다. 이것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자 이삭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보고 부르짖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그러나 그때 아브라함은 혼잣말로 속삭였다. “마땅히 그래야지. 아들이 나를 괴물로 믿고, 나를 저주하고, 내가 그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차리리 더 낫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린 시험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어. 만일 알게 되면 그는 정신이 나가서 하나님을 저주할지도 몰라.”
그러나 이런 갈등을 접해본 현대 시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브라함의 행동은 참으로 시적이고, 고귀하고, 내가 일찍이 비극에서 읽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고귀하다. 아기를 젖뗄 때, 어머니는 젖가슴을 검게 칠하지만, 엄마의 두 시선은 아이를 사랑스레 바라본다. 아기는 젖가슴이 이상하게 변했다고 믿게 되지만, 어머니는 변함이 없다. 엄마가 왜 젖가슴을 검게 칠했을까? 엄마가 말하길, “왜냐하면 아기가 젖을 먹을 수 없는데 젖가슴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수치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갈등은 쉽게 해결된다. 왜냐하면 가슴은 엄마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 끔찍한 충돌을 경험하지 않은 자, 자신을 검게 칠할 필요가 없는 자, 자신이 악마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그런 방식으로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는자, 그는 행운아이다. 이것이 아브람의 충돌이었을 것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낸 사람이 내 삶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와 동시대인들 중에 누가 이것을 이해했을까?
* 이것을 설명하는 일기는 다음과 같다.
JJ:95, Pap. IV A 85
내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내 논문에서 내 삶을 실제로 채운 것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이것이 나의 위로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내 속사람 속의 저 대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본은 종종 세상이 사소한 일이라고 부르는 것을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비밀 메모를 제거하면, 나 역시 그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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